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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 단양 이요루에 오르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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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1)

[千日野話]퇴계, 단양 이요루에 오르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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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농담으로 한 말을 어찌 지켜야 한단 말이냐? 더구나 부모와 어린것을 두고 떠나는 일은, 하나의 사랑으로 다른 예(禮)를 모두 버린 것이니 어찌 옳을 수 있겠는가."
두향이 말했다. "나으리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 마음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아니다, 아니다. 그건 지나친 것이로다."

3월 어느 날 두 사람은 단양 관아가 있는 하방리 일대를 거닐었다. 퇴계가 근무하는 동헌(東軒)은 적성(赤城)을 뒤에 두고 그 품에 안기듯 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어땠을까. 단양 관아가 있는 풍경은 약 190년쯤 뒤에 그린 어느 그림에 남아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구학첩(丘壑帖ㆍ구학이란 언덕과 골짜기란 뜻으로 산과 물(山水)을 의미함)이 그것이다. 겸재의 13번째 화첩으로 불리는 이 그림들은 단양 일대의 풍광을 담은 것인데,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세 점이다. 도담삼봉과 하선암 풍경,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봉서정(鳳棲亭)이다. 이 정자는 1602년(선조35년) 단양군수 이준이 지은 것으로 퇴계 시절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겸재의 봉서정 그림을 들여다보면 퇴계의 시절로 충분히 돌아가볼 수 있다. 봉서정은 관청 앞에 지어져 정문으로 일컬어지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봉서정 뒤에는 몇 개의 건물이 보이는데 동헌과 객사, 그리고 향교 건물일 가능성이 있다. 봉서정 옆에는 2층으로 된 건물이 하나 붙어 있다. 이것은 이요루(二樂樓)이다. 나란히 지어진 이요루와 봉서정 옆으로 난 길은 동헌으로 통하게 되어있고 그 길로 이어진 다리 하나가 보인다. 이 다리가 우화교(羽化橋)이다.

봉서정은 왜 정(亭)이고 이요루는 왜 누(樓)일까. 정(亭)은 대개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누보다는 작은 규모이며 개인적인 수양 공간이나 시모임을 갖는 장소로 많이 지었다. 누(樓)는 2층 이상의 다락집 구조로 된 것이 많으며 공공학교 시설이거나 관아의 연회장소로 쓰이는 곳으로 누각이라고도 부른다. 누각은 때로 그 높이 때문에 군사적인 방어 지휘소로 이용되기도 하는 곳이다.

봉서정과 이요루가 단양 관아 앞에 갖춰져 있는 겸재의 단양 구학첩의 제작 연대는 1738년으로 추정된다. 퇴계가 이곳에 머물러있던 1548년엔 어땠을까. 봉서정이 있기 전에 이 자리엔 다른 건물이 있었을까. 아마도 봉서정 자리는 그냥 비어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퇴계보다 37년 앞선 사람인 탁영(濯纓) 김일손(1464~1498)이 이곳을 지나며 쓴 '이요루기(二樂樓記)'에는 옆에 있는 정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요루 옆에 있는 건물을 보았더라면 과연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나쳤을까. 퇴계가 근무한 지 54년 뒤에 지어지는 봉서정 건물은 경관만을 고려한 나머지 좀 취약한 지반 위에 세워졌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영조 말에 건물 장소를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이다. 단양군은 2012년 봉서정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과연 봉서정이 단양 관아를 대표하는 건물일까. 태종 대에 지어졌고, 안평대군이 편액을 걸어준 이요루야 말로 역사의 기억을 많이 지닌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는 점에 대해 면밀히 살피지 않은 것은 아쉽다.

김일손의 '이요루기'는 당시의 단양 풍경을 잘 전하고 있는 명문인지라, 우리도 잠깐 즐기고 지나감이 좋겠다.

"중원(中原)으로부터 동으로 행하여 죽령(竹嶺)을 향하노라면 그 사이에 즐길 만한 산수(山水)가 하나가 아니었다. 황강(黃江)과 수산(壽山) 두 곳을 지나 청풍(淸風)의 경계를 다 가서 한 고개를 넘어 단양(丹陽) 경계를 들면 장회원(長會院)에 이르는데, 그 밑에서 말고삐를 잡으면 점차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간다. 별안간 쌓인 바위가 우뚝히 일어 높은 봉우리와 푸른 아지랑이가 동서좌우를 아득하게 한다. 벼랑이 열리고 산골짜기가 터지자 한 강물이 가운데로 흐르는데, 쪽빛 푸른빛이 잠겨 있고 강 북쪽 기울어진 아주 험한 언덕 위 수백보에 성(城)이 있어 가히 숨을 수 있으니, 옛 이름은 가은암(可隱巖)이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한림별곡에 분개하는 퇴계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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