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용민 기자] 최근 들어 전화번호는 내 휴대폰에 부여된 식별번호의 개념을 넘어섰다. 전화번호 하나로 사용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인터넷에 남긴 과거의 흔적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전화번호는 이제 '또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 종종 잘못 걸린 전화 한 통으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난해 개봉한 한 영화에서는 옛사랑에 허덕이며 망가져 버린 남자가 야릇한 전화 한 통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잘못 걸린 전화가 범죄(전기통신법 위반)로 번지는 사건도 발생했었다. 상대방의 욕설로 기분이 상한 발신자가 '해당 번호는 결제를 유도하는 사기전화'라는 괴소문을 퍼트려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사이버수사대가 긴급 수사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가끔은 유사한 '이름' 탓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잘못 걸린 전화를 하루 평균 3~5건씩 받는다는 직장인 정 모 씨는 "(잘못 걸린 전화가) 항상 같은 사람을 찾는 탓에 그 사람 이름, 직업, 사는 곳까지도 알고 있다"며 "최근에는 어디를 방문했고 어디에 차를 세웠으며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메타폰'이라는 크라우드소싱(대중 참여) 방식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한 표본 중 전화번호 5000개를 무작위로 고른 후 옐프, 구글 지역정보, 페이스북 디렉터리 등 무료 공개서비스 3곳에서 이 번호들을 검색했다.
그 결과 기계적인 단순 검색만으로도 사용자를 알 수 있는 비율이 27.1%에 이르렀다. 서비스별 사용자 파악 가능 비율은 옐프가 7.6%, 구글 지역정보가 13.7%, 페이스북이 12.3%였다.
또 기계적인 단순 검색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 경우 사용자 이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확보한 전화번호 중 100개를 무작위로 골라 구글 검색을 한 결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사용자 60명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은 원리를 이용해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생활 편의를 제공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들도 눈에 띈다. '후후'나 '후스콜' 등 앱들은 전화나 문자를 수신하는 즉시 발신 전화번호를 비롯해 인터넷 상에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까지도 추척해 제공한다.
권용민 기자 festy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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