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코 조부장이란 사내는 분위기를 잡느라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자리를 잡고 앉은 영감들은 그가 뭐라 떠들든 상관없다는 듯이 앞에 놓인 산더미 같이 잘 차려진 음식에 젓가락질 하느라 바빴다. 자기네들 끼리 떠들고 술잔을 돌리느라 그따위 입에 발린 연설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조부장이라는 사내 역시 그런 상황을 파악했는지,
“그럼, 영양가 제 없는 말씀은 여기서 그치고, 다음은 오늘 특별히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우리 송종팔 사장님을 뫼시고 한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
그러자 벤드 소리에 맞추어 미끈한 검은 승용차 뒤에서 이번엔 땅딸막한 오십대 후반의 검정색 뿔태 안경을 쓴 오십대 후반의 양복쟁이가 조폭 두목처럼, 졸개들 두엇을 달고 앞으로 나왔다. 키는 작았지만 덩치는 빵빵하게 바람 넣은 축구공처럼 다부지게 보였는데 올백으로 기름칠 하여 넘긴 머리는 염색을 해서 까맣게 윤이 났다.
그런데 그의 뒤를 경호원처럼 바싹 붙어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던 하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저 인간은.....?’ 하림은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커다란 키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볼, 푹 꺼진 눈자위.... 수도 고치러 왔던 바로 그 사내였다. 이런 자리에서 저런 포즈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허름한 예비군복 대신 깔끔한 곤색 양복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으니까 마치 딴 사람 같았다. 하림은 마치 돌덩이로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우리 영업부장이 말씀 올린 <차차차 파라다이스> 사장되는 사람, 송종팔이 올씨다. 반갑습니다. 큼큼.” 큼큼 몇 번 헛기침을 한 송사장이 손수건을 꺼내 목과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나서 입술을 혀로 한번 적신 다음 입을 열었다.
“오늘 날도 더운데 이렇게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조촐한 잔치 자리라고 마련한 것에 대해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이 살구골, 고향 같은 곳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시원한 계곡 있지, 넓은 저수지 있지, 서울에서 가깝지, 없는 것 없이 좋은 내 고향 살구골, 저는 항상 어딜 가나 자랑하고 다닙니다. 자랑은 하고 다닙니다만 언제나 또 마음 한구석, 돌멩이 하나 매달고 다니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입지조건에도 불구하고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매한가지로, 전국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 바로 내 고향 살구골이기 때문입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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