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끝난 것도 아니다. 더 끔찍한 위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넉 달 후면 시작되는 겨울철 전력 위기가 그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3일 우리의 전력 수요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맹추위 속의 강제 절전은 차원이 다르다. 사람, 농작물, 가축의 목숨이 달린 일이 된다.
지난 2년 동안 잠잠하던 산업부가 느닷없이 내놓은 대책도 짜증스럽다. 이미 한물 가버린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을 들먹이는 모습부터 그렇다.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이나 스마트그리드는 먼 훗날에나 가능한 꿈이다. 심야와 피크 시간의 요금 차이를 확대해서 공공기관과 대형건물에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를 유도하겠다는 정책은 전기요금을 올려 보겠다는 얄팍한 꼼수다. 야간의 전력수요가 넘쳐서 심야전기 제도를 폐기했던 일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정말 짜증 나는 것은 전기요금 현실화만 외쳐 대는 일부 몰지각한 전문가와 언론이다. 지난 2년 동안 5차례나 전기요금을 올리고 누진제를 손봤지만 전력 소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전기 소비를 포기할 대안이 없는 소비자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라서 문제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생산 원가는 소비자의 전기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전기의 생산 원가는 하느님도 알 수 없는 공허한 숫자 놀음이다. 전력산업계의 비리만 걷어 내도 원가는 큰 폭으로 줄어든다. 가정용과 산업용의 요금 차이를 들먹이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악수다. 선진국과의 전기요금 비교는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엉터리 논리다.
국민의 짜증을 달래 주고 전력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정부가 전기 소비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서 우선 당장의 전기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경유로 전기 난방을 대체하고 천연가스로 전기 냉방을 하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비현실적인 대안만 쏟아 내는 엉터리 전력 전문가는 경계해야 한다. 대표적인 혐오 시설인 발전소를 대도시 근처에 짓겠다는 분산형 공급은 삼척동자도 웃을 황당한 주장이다. 에너지 소비의 절약과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진짜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무능과 무책임이 도를 넘어선 에너지 당국을 뿌리부터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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