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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설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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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로 낭패를 당한 경험을 얘기했을 때, 친구 하나는 나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설사를 부러워하다니? 궁금해하는 내 귀에 들려준 그의 얘기는 근 십년째 겪고 있는 변비의 괴로움이었다. 그 환장할 노릇을 필설(筆舌)로 다 말할 수 있으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소식이 안 온다. 회벽 칠한 흰색 같은 먹먹한 공포감. 인풋은 쌓여 가는데 아웃풋이 없는 함흥차사. 마치 신체 내부에 비대한 화장실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듯한 불쾌감. 몸속에서 진행되고 있을 '부패'가 피부를 누르뎅뎅하게 만드는 듯한 기분. 끙끙 앓듯, 일주일에 한두 번, 마치 VIP를 맞는 기분으로 일을 치르는 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을 치르는 '병'은 병이 아니라 특권 같은 것으로 여겨질 만했다. 그의 논리 앞에, 설사는 축복받은 항문이고, 변비는 저주받은 항문이다.

그러나, SS(설사)든 BB(변비)든 축복받은 것일 리야 있겠는가. 모두 정상적인 일들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일일 뿐이다. 우리가 쾌변(快便)이라고 말하는 것의 그 쾌(快)가 달아난 '부적절한' 변고(變故)이다. 인간을 만들어 낸 조물주는, 자신의 작품이 그런 일을 당하도록 설계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란 뜻밖의 고장들이 나지 않는가. 특히 대개 자동(自動)에 가깝게 설계된 인간의 부품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트러블들은, 신이 그때그때 일일이 개입하여 해결하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자율적인 수리(修理) 기능을 작동하여 고장난 상황을 풀어 가도록 설계해 놨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나는 그 얄궂은 디스오더(disorder)에도 하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억울한 경우가 왜 없으랴. 나는 이것을 '정신적 설사' 혹은 '정신적 변비'라고 부르고 싶다. SS와 BB는 자주, 신체의 문제 그 이상이다. 먹은 것이 정상적인 처리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다시 빠져나가게 하는 일이란, 인간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이다. 원래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을 겪기 시작하면, 정신은 항문의 문제에 긴장하게 되어 있다. 항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그 문제를 더 키워 놓는다.

상하이에 갈 기회가 있었다. 어느 화장품의 신제품 발표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2박3일은 내게 기분전환을 위한 상쾌한 '어웨이 게임'이기도 했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다음 주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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