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외숙모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을까.
마흔한 살. 그리고 열한 살. 외숙모의 방에서는 모과 향기 같은 게 났다. 젊은 여인의 몸 냄새였을까. 아랫목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 무렵, 등 뒤에서 외숙모가 비녀를 꽂은 머리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다시 내가 문득 새벽녘 잠귀로 듣는, 비녀 꽂는 소리로 이어졌다. 그때 어느새 나가서 감고 온 머리에서 나는 젖은 냄새가 코끝으로 전달되어 왔다. 밤과 아침은 그사이에 있었다. 옥수수를 삶아 주며 일본어와 한자를 가르친 건 초등학교 때였고, 영세골 뒷산에서 들꽃을 꺾어 꽃꽂이를 만들어 준 건 중학교 때였고, 한밤중 초가지붕 처마에 사다리를 받치고 올라가 잠을 자러 들어온 새들을 함께 잡던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그 15년 동안 나는 외숙모의 슬하에서 자란 셈이다.
2013년 5월. 매일 가는 선방(禪房)에서 시린 무릎으로 돌아와, 벤자민이 무성한 아파트 거실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듣는 외숙모는, 문득 생질조카를 떠올렸을까. 여든셋. 이 외로운 길에 동행해 주지 못하는, 쉰셋의 무정을 괘씸히 여겼을까. 저를 아들처럼 키웠는데, 나쁜 놈. 슬며시 돋아나는 그런 부아를 지우며 거실을 닦던 걸레에 더욱 힘을 주었을까. B의 말이, 내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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