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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6장 봄비 내리는 아침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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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6장 봄비 내리는 아침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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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응. 노래하던 여자는 그들에게 잡혀서 노예가 되었지. 하지만 노래를 잘 하였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여자는 철기시대의 가장 사나운 인간, 곧 왕의 눈에 띄어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어. 왕비가 되었던거야.”
“그럼 해피엔딩이네요.”
소연이 다행이란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시작은 그때부터야. 오빠가 정말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청동기 시대의 행복했던 도시 모헨조다로가 사나운 사내들이 차지하면서, 그리고 드디어 왕과 왕비, 신하와 백성이라는 계급들이 등장하고 부터야. 그때부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거든.”
하림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 소연을 쳐다보았다. 소연이 자기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소박한 시골 처녀가 어떻게 인간 역사의 굽이치는 소요돌이를 이해할 수 있겠으며, 야만과 야만의 투쟁으로 변해버린 이 짐승 같은 시대의 어둠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림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림은 <전쟁이 인간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간의 진화는 야망으로부터 문명으로 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어쩌면 핵무기와 증오로 가득 찬 이 세상의 결말은 영화 ‘혹성탈출’에 나오는 것처럼 결국 종말에 이르고야 말 것이라는 것.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배문자가 아무리 결말은 슈퍼맨이나 베트맨처럼 영웅의 출현으로 해피엔드로 끝나야한다고 주문했어도, 그런 주문을 하던 배문자나 자기는 알고 있었다. 결코 다시는 그런 모헨조다로 같은 시대가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어때....? 재미있을 것 같애?”
대충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하림은 소연의 반응을 살폈다. 처음엔 막연했던 줄거리가 그래도 소연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는 느낌도 들었다. 자기 역시 그 다음엔 어떻게 써야할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잘 모르겠지만.... 모헨조다로의 그 노래하는 여자의 운명이 궁금해요.”
“소연이 너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애?”
“글쎄요. 만화라니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행복....? 그 여자가 과연 행복할 수 있었을까?”
하림이 자문하듯 되물었다.
“그래두. 누군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 독자들도 조금은 위로를 받을 것 같은데요. 더구나 노래 잘 부르는 아름다운 여자라면.....”

“후후. 좋아. 소연이의 뜻을 참고하도록 하지. 누군가는 행복한 꿈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게 사실 중요해.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요?”
“그 여자로 하여금 다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거야. 왕의 침실에서도, 궁궐의 발코니 모퉁이에서도, 그 옛날 자기가 살았던 고향 이야기를.... 모두가 공중 목욕탕에 나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골목에서 아이들과 여인네들의 떠드는 소리가 비누방울처럼 울려퍼지던 모헨조다로의 평화롭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 여자에게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겠죠?”
“응. 물론.”
하림은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사실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러면 좋을 것 같았다. 역시 이야기 꺼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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