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인사에 대한 사항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애초 단체협약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건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103조에 근거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단협을 통해 채용 세습을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라며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했다. 일자리 대물림을 '구직 희망자를 좌절시키는 반사회질서 행위'로 규정한 셈이다.
현대차의 경우 정규직 신규 채용 시 면접 대상자의 25%를 정년퇴직자나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에 할당하고 있다. 5%의 가산점도 준다. 엄청난 특혜다. 기아차 노사도 지난달 장기 근속자와 정년퇴직자 자녀에게 1차 면접 때 10%, 2차 면접 때 5%의 가산점을 주기로 합의했다. 한국GM,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 많은 대기업의 사정도 비슷하다. 2011년 기준 200대 기업 중 노조가 있는 157곳의 32.5%인 51곳이 단협에 직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자리 대물림은 다른 구직자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부도덕한 행위다.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이기적 행태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기아차 노사가 직원 자녀 우선 채용에 합의한 지난달 비정규직 직원 한 명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이 단적인 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채용 세습은 반노동자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와 노조 모두 판결의 의미를 새겨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 노조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조합이기주의에 빠져선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사회질서와 정의에 반하는' 일자리 대물림 관련 조항을 스스로 폐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옳다. 직원 자녀 우선 채용이 산재로 숨지거나 퇴직한 조합원 가족의 생계대책을 위한 것이요, 대상자도 소수로 문제 될 게 없다며 유야무야 넘어가려 해선 안 될 일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노조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나아가 노동 운동의 정당성마저 잃게 된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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