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지와 너무 다른 소비자가격, 무엇이 문제인가
역대 정권이 그러했듯 박근혜 정부도 유통구조의 문제를 개선해 농축산물 물가를 잡겠다고 공약했다. 생산자단체 중심의 조직화ㆍ규모화ㆍ계열화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만족하는 유통구조'를 5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다.
유통업체들도 이에 화답하듯 잇따라 구조개선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이 모두 정책의 일관성과 시스템이 수반되지 않으면 역대 정권처럼 소리만 요란할 뿐 성과 없이 끝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아시아경제신문에서는 유통구조 혁신을 위해 정부가 바꿔야 할 구조적인 문제점과 현 주소, 해결방안 및 유통업체들의 혁신코드 성공적 사례 등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업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유통시스템 구축방안을 제시해본다.<편집자주>
생산자-산지 유통인-도매시장-중간도매상-소매상으로 이뤄진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농축산물 유통구조
중간단계 늘어날 수록 공급자의 수익은 줄고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늘어나
채소값이 순식간에 폭등하고, 산지의 소ㆍ돼지 값이 폭락하는데도 소비자가격은 요지부동
결국 공급자와 소비자는 피해보고 중간상인만 배불리는 꼴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 오주연 기자]#2010년,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5000원까지 오른 적이 있다. 소위 '배추파동'으로 동네 가게에서 배추나 포장김치가 자취를 감췄고 밑반찬에서 김치를 빼는 음식점도 속출했다. 이상 기후영향 탓도 있지만 중간 도매상 몇 명이 가격을 쥐고 흔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지난 1일 대한한돈협회 소속 상인들은 돼지 값 폭락에 따른 줄도산을 우려해 정부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돼지고기 가격이 사육원가를 크게 밑도는 상황이 반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며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에 대한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은 돼지 값 폭락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정육점에서 사먹는 고기나 음식점에서 파는 가격이 예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형성되는 농수축산물의 가격과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산지에서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4~5배 비싼 가격을 바로 체감하게 된다. 반면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싸게 사먹고 있다. 산지와 소비자의 가격이 곧바로 연동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먹거리 유통은 그만큼 왜곡돼 있다.
이는 유통 구조 때문이다. 유통구조는 보통 5단계에서 최대 7단계에 이른다.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중간도매상들은 가격이 폭락하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만큼 값이 오를 경우 최대 이익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 진폭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회 농림어업 및 국민식생활 발전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은 "현재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생산자인 농업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구조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생산자는 배추 한포기당 300원을 받는데 소비자는 1336원에 구매한다"며 "농산물 산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 없이는 유통구조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다"고 말했다.
현재 농산물의 경우 생산자→산지 유통인→도매시장→중간도매상→소매상 등 5단계로 이뤄진다. 축산물 역시 생산자→수집 반출상(우시장ㆍ농협)→도축장→도매상→소매상 등 5단계를 거친다. 사례에 따라 도매상이 추가로 끼워지기도 한다. 중간에 이득을 취해야 하는 중간상들이 많아지다 보니 가격에 거품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2011년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농축산물 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41.8%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무ㆍ배추가 각각 80%, 77%로 가장 높고 당근(66.6%), 양파(71.9%) 등의 순이다. 소고기, 돼지고기도 유통비용은 40%에 달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가격 간극이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배추의 경우 배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밭데기 거래를 통해 중간상인에 판다. 1000평에 800만원을 주고 팔았다고 치면 대략 포기당 800~900원에 파는 꼴이다. 시장에 나가기 위해 수확과 상차작업 비용이 더해진다. 공판장에 도착하면 하차비가 또 포함된다. 공판장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경락된다. 경매붙이기 전 가격과 경락가 차액인 포기당 적게는 300~400원, 많게는 1000~2000원의 가격이 중간상인에게 떨어진다.
경락받은 중도매인들은 경락가를 붙여 유통점이나 소매상에게 넘긴다. 소매점에서는 적정 마진을 남기고 최종 소비자에게 팔게 된다. 결국 산지에서 700~800원에 팔린 배추는 소비자가 살 때는 3000~4000원이 된다. 힘들게 농사를 지은 농민의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고 소비자들은 산지가격의 수배를 내고 비싸게 사먹을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3월말 현재 돼지 1마리 생산비는 36만원. 그러나 한돈 농가들은 이에 크게 밑도는 수준인 도매가 기준 24만원을 받고 있다. 한 마리당 10만원 이상씩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러나 일반 음식점의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생산자→수집반출상(우시장)→도축장→도매상→소매상 등 5~7단계에 이르는 유통단계를 거치며 최종 소비자한테 들어올 때 쯤이면 산지가격의 4~5배씩 뛰어있기 때문이다.
독산동 우시장 도매상인 이모(50)씨는 "경매에서 부르는 돼지고기 도매값이 3500원(1kg)이다. 여기에 중매 수수료ㆍ운송비ㆍ해체작업비ㆍ세금 등이 붙어 팔 때에는 4500~5000원 정도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4500원~5000원 수준도 돼지고기 전체에 대한 값이지 '삼겹살' 값은 아니라는 것이 이 씨 설명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 목살 등 특정 부위는 가격이 달라 소비자들 산지 가격 하락세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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