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따라 걷는 오대산 월정사~상원사 잇는 선재길(천년의숲길) 9km
古刹일수록 그 절로 가는 숲길은 아름답다. 오래된 숲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은 힐링이 된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르는 약 9㎞ 옛길이 꼭 그러하다.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흙길과 오솔길을 번갈아가며 걷는 길이다. 천년 사찰 월정사로 이어지는 길이라 '천년의 숲길'이라 불린다.
전나무숲은 일주문에서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 거리. 10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우렁우렁 헌걸차다. 이 숲길은 절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4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전나무의 곧추선 기상은 상념을 통렬히 깨트리는 죽비처럼 장쾌하다.
길게 누운 흙길을 따라 걷다 걸음을 멈췄다. 새 생명들이 내뿜는 청량한 기운을 가슴 깊이 담아본다.
숲길에는 죽은 전나무 고목 등걸이 누워 있다. 2006년 10월 23일 밤 홀연히 쓰러졌다. 600세 최고령 전나무 어른이 눈을 감은것이다. 밑동은 가운데가 텅 비어 나무통이 되었다. 동강난 나무 윗부분은 허허롭게 바닥에 누워 있다. 다람쥐와 산짐승들이 그 통속을 들락거린다.
전나무 숲에 들어앉은 부도밭에도 눈길을 준다. 부도밭 곁에 '오대산장 4km'라 적힌 작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봄이 오면 이 길을 맨발로 걸으리라'는 글귀도 있다.
월정사 반야교를 지나 회삼거리에서 옛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터는 오대산 선재길이다. 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오래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오대천 골짜기를 따라 길이 구불구불 가르마처럼 나 있다.
길은 계곡 오른편으로 나 있다. 계곡에서 바라본 오대산은 이제야 봄빛이 돌기 시작했다. 남도에는 꽃소식이 한창이지만오대산은 5월에 들어서야 산이 봄빛으로 물든다. 그 전까지는 그저 전나무와 금강송만이 독야청청 푸르다.
1km쯤 갔을까. 징검다리를 건넌다. 장정 둘이 마주 건너도 남을 만큼 널따란 바위들이 놓여 있다. 계곡을 따라 이름모를 꽃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바람이 가끔 '쏴아∼' 하고 숲을 흔든다.
이번에는 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를 만난다. 다리가 걸린 계곡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두고 '쌩~' 내달리는 차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차를 이용하면 10분이면 된다. 하지만 굳이 차 타고 갈 필요가 없다.
아늑한 오솔길이 얼마간 이어지다 계곡을 끼고 나무데크가 길을 맞는다. 파란하늘, 상큼한 바람, 계곡물소리에 봄기운이 잔뜩 묻어있다. 뒷짐을 진 채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봄날의 향기가 온몸을 타고 흐른다. 숲길과 계곡길에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발도 담그다 보면 걷기의 행복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나무데크를 지나자 이번에는 섶다리가 마중을 나온다. 섶다리를 지나서도 여전히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가며 길은 사라지고 차들이 오가는 비포장도로다. 그 길을 따라 300m쯤 걸었다. 다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차도 오갈 수 있는 시멘트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자 텃밭이 있고, 정겨운 산막도 있다. 길은 산막을 지나서 키 낮은 잣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오대산장을 지나면 상원사까지는 차와 함께 하는 비포장길이다. 이 때문에 자연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대산장에서 발길을 맺기도 한다. 그러나 내친걸음. 오르막도 아니고, 평지도 아닌 딱 걷기 좋은 길이기에 계곡을 따라 상원사로 향한다.
번뇌가사라지는길을 따라 경내에 들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오대산 자락에 등을 기댄 채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다.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풍경소리가 한순간에 번뇌를 씻어간다.
오대산(평창)=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나와 국도 6호선를 타고 가다 월정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446번 지방도로 따라가면된다. 주차요금을 내면 상원사앞까지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천년의숲길'을 걷기 위해선 매표소부근에 차를 두고 가는게 좋다. 숲길을 걷고 나서는 상원사에서 진부터미널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월정사나 매표소로 가면 된다. 반대로 상원사에서 월정사방향으로 내려오는 방법은 조금 길이 편하다. 평창운수(033)335-6963. 월정사로 들려면 문화재관람료(3000원)와 주차료(4000원)를 내야 한다.
△먹거리=월정사 매표소 부근에 식당촌이 몰려있다. 음식점들은 대개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황태와 더덕구이, 버섯전골 등 토속음식을 내놓는데 맛은 비슷하다. 오대산가마솥식당(033-333-5355), 오대산통일식당 (033-333-8855), 유정식당(033-332-6818)등이 알려져있다.
. 여행전문기자 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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