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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시장주의자 금융수장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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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휘발유 뿌리고 불 지르겠다" "사위 딸 손자 몇동에 사는 지 다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집을 찾은 시위자들이 외친 구호다. 시위자들은 지난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나이대도 50대에서 70대로 지긋한 분들이지만 외친 구호는 섬뜩했다.

이들의 시위는 오후 5시부터 세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그 시간 집을 비운 김 위원장은 이들과 마주치지 않았지만, 밤 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은 이틀 뒤인 31일엔 광화문 금융위원회를 찾아 다시 시위를 벌였다.
피해 규모가 자그마치 7361억원인데다 여윳돈이 아니라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사정은 딱하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딱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더구나 이들이 외친 구호를 보면 자식 키우는 부모의 입에선 나올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재정투입 불가'를 일년 내내 외쳤다. "재정투입은 신중해야 하며 현재는 이를 해야 할 시점이 아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경기 악화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돼도 그의 발언은 한결 같았다.

재정 투입엔 신중하되, 일단 한번 손을 댈 땐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 평소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가게부채 공약과 사뭇 다른 견해를 밝혀 주목받았다. 박 당선인은 하우스푸어 구제책으로 '국민행복기금을 활용한 가계대출 채권 매입'을 내세웠는데, 김 위원장은 "다양한 방안을 연구할 수 있지만 정부 재정 투입은 안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저축은행 사태와 하우스푸어 문제 등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뒤흔든 이슈에서는 항상 원칙을 저버린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후순위채 피해자들의 시위와 금융위원장의 수난 소식을 접하면서 시장주의와 같은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시회문화적으로 정착되기까진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위는 국민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인권과 기본권도 엄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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