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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쓰고 버리는' 클리넥스 같은 나,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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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1981년생 양자경 씨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호프집 서빙과 화장품 판매 등을 전전하다가 LG전자 사내하청으로 취업한다. 그러나 일을 하며 시력이 나빠져 3년만에 그만뒀다. 지금은 의류점에서 옷을 팔고 있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1998년 공기업에서 희망퇴직한 52세 장동화씨는 10년만에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부인의 암투병에 들어간 의료비가 큰 타격이었다. 할인마트 영업직원으로 일하던 47세 최진경씨는 성희롱에 항의하다가 직장을 그만뒀다. 자기 사정으로 그만둔 것으로 간주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날아라 노동'이 그려내는 지금 우리 사회 노동의 풍경이다.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동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모텔에서 일하는 류승호(36)씨는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노동자인 것 같은데 사회보험이나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75쪽)" 전체 노동자의 460만명이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편으로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1년 기준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비정규직은 모두 599만 5000명. 전체 노동자의 34.2%다. 좀 더 광의의 기준을 적용하는 노동계 추산 비정규직 수는 무려 895만 3000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인 49.4%에 달한다.
'날아라 노동'은 일단 한국 사회의 노동을 이해하는 보고서다. 계약직, 시간제 노동, 파견이나 용역, 일일근로 등 미처 몰랐던 불안정한 노동의 상황을 통계치와 함께 제시하고 지난 10년간 직접 인터뷰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덧입혔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연구'의 결과물을 뛰어넘는다. 책에는 저자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살아온 삶의 단면이 비친다. 은 의원은 1984년 구로공단 봉제공장 노동자로 취직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거의 30년의 세월동안 노동운동에 천착해왔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은 의원의 궤적과 맞물려 책의 내용은 좀 더 신뢰를 획득한다. 책 속에 거론된 민감한 노동문제에 대해 굳이 온도를 높이지 않고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점도 미덕이다.

이제 은 의원은 정책입안자가 됐다. 책 말미는 한국사회의 노동이 지닌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국내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은 의원은 노동조합이 더 많은 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 정리해고 제한, 일자리 나누기와 신규채용 확대 등 다양한 '일자리 지도 바꾸기 로드맵'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책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책을 닫으며 은 의원이 남기는 질문일 것이다. "노동을 해야 먹고사는 모든 사람이 그것에 얽매여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지 않도록, 노동에의 속박을 넘어서도록 만드는 핵심은 무엇일까? 노동권의 확립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아직 근대적 노동의 세계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한국 사회에 던지는 고차원의 수수께끼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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