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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커피 타는 '비정규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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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 다음달 9일 총파업..임금체제 개선, 고용안정 등 요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경기도 한 공립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A씨(53)는 지난 여름방학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방학이라 교내 급식실이 문을 열지 않자 행정실 직원들이 A씨에게 매일 같이 점심을 차릴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직원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은 할 일도 없지 않느냐, 사먹거나 시켜먹는 것은 질리니까 찌개와 밥을 준비하라'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커피를 타는 일은 기본이다. 커피가 준비돼있지 않으면 행정실장이 "커피도 안주고 그렇게 바쁘냐"고 비꼬기 일쑤였다.

교장은 한 술 더 뜬다. 이 학교 교장은 매년 봄에는 매실을, 가을이 되면 유자를 A씨에게 사다준다. 물론 A씨 먹으라고 사주는 건 아니다. 매실과 유자를 가지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A씨는 "교장이나 정규직 직원들이 허드렛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킨다"며 "커피를 타는 일이 내 고유의 업무가 아니지만 행정실 분위기를 나쁘게 할까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교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요구사항을 거절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A씨는 행정실에서 학교의 예산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한다. 방과후 활동 및 현장학습 등의 비용을 학생들에게 징수해 학교에 수납하고, 학교 내 각종 급식 및 공사 계약업무를 처리한다. 이러한 학교 살림살이를 맡아 한 지가 이 학교에서만 12년째다. 2000년 8월 당시 받은 첫 월급이 60만원대였는데 지금은 세금을 제하면 120~130만원을 받는다. 10년이 넘게 일하는 동안 월급은 60만원 오른 셈이다. 이러는 동안 정규직 직원들과의 월급 격차는 더욱 심해져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했다.

경북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B씨(50)도 각종 차별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교생과 교직원 160명 가량의 점심을 3명의 조리원들이 매일같이 준비한다. 오전 내내 각종 재료를 씻고, 다듬고, 썰고 조리하느라 손목과 팔에 마비가 올 지경이다. 정작 본인들의 점심은 5분만에 서서 후딱 해치우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몸이 아픈 것은 둘째치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학교다 보니 학생 수는 매년 줄고 있다. 통폐합되는 학교도 상당수다. 학생 수가 줄어들자 학교에서는 가장 먼저 비정규직 직원 규모를 축소할 계획을 세웠다. 직원들에 대한 상대평가를 실시해 평가가 좋지 않은 직원부터 내보내겠다는 방침이다. 밥벌이가 급한 조리사들이 평가 점수를 매기는 정규직 영양사들에게 잘보이려고 경쟁을 펼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B씨는 "상대평가는 사실상 평가를 매기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거 아닌가. 평가를 하더라도 실력이나 근무태도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이지만 2~3개씩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조리사도 많다"고 말했다.

학교 비정규직은 전국적으로 약 15만명이 넘게 있다. 직종별로는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등 급식종사자가 43%로 가장 많다. 교무보조, 특수교육보조, 과학보조, 행정보조, 사서, 시설관리직, 청소원 등도 모두 학교 비정규직들이다. 이중 상시·지속적인 근무 인원은 74%인 11만명 가량이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5만명 정도 된다.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교육감 직접고용'이다. 현재는 교장이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장 자의에 의한 계약 해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임금 체제도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윤재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은 "학교내 비정규직들은 재계약때마다 촌지 등을 강요받고, 교장 눈에 잘보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단위의 고용 자체가 고용의 안전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조에서는 정부의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다음 달 9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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