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서비스 장악하던 통신사, 모바일 플랫폼 열리자 입지 줄어...제조사 영향력 커저 판매처 경쟁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갑을 관계가 명확했던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간 '힘의 균형'이 격랑에 휩싸였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통사들의 우월적 지위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을 노려 제조사들은 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구도 재편에 따른 양측간 신경전은 급기야 단말 자급제(블랙리스트) 도입으로 격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통신 산업의 불가결한 협력 관계이자 불가피한 경쟁 관계인 다변화된 구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아이폰 도입의 충격파는 그만큼 컸다. KT는 지난 2009년 11월 아이폰 3GS를 출시하면서 보조금을 대폭 제공했다. 월 4만5000원 요금제로 24개월간 사용하면 총 5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보조금보다 30만원 높은 수준이었다. 비슷한 시기 SK텔레콤으로 출시된 삼성 옴니아2는 월 4만5000원 요금제로 24개월간 사용하면 22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게다가 애플은 국내 제조사와 달리 통신사에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KT가 그 부담까지 떠안았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KT가 아이폰을 도입한 것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승부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통사와 제조사간 관계가 재설정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모바일 생태계의 개방은 제조사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제조사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약 60%)가 통신사 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약 50%)보다 우월적인 점유율을 행사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단말기 지배력을 바탕으로 이통사들의 영역인 모바일 서비스 시장까지 진출을 꾀하고 있다.
제조사의 달라진 위상은 갤럭시S3 출시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2010년 6월 갤럭시 S를 출시했을 때 삼성전자는 이통사와 개발 과정부터 긴밀히 협력했으나 갤럭시 S3는 정보 공유를 최소화했다. 기존에는 통신사에 1년 간 출시할 단말기 라인업도 공개했지만 올해부터는 분기 기준으로 바꿨다.
전문가들은 시장 환경이 달라진 만큼 통신사와 제조사가 갈등하기보다는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도권 싸움으로 국내 이통 산업의 발전을 훼손할 것이 아니라 윈윈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지훈 관동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존에 네트워크만 제공했던 통신사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제조사와 갈등, 반목하기 보다는 제조사나 인터넷 사업자와 제휴해 고객의 편익을 높여주는 서비스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용어설명(블랙리스트)=도난당하거나 분실된 휴대폰의 국제모바일기기식별번호(IMEI)만 이통사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이통사에 단말기를 등록하지 않아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제조사의 자체 유통망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도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권해영 기자 rogueh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