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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증시에 규율이 필요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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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미장아빔(mise en abyme)'이라는 예술적 기법이 있다. 이야기 안에 이야기를, 이미지 안에 이미지를, 그리고 영화 안에 영화를 넣거나 음악 작품 안에 다른 음악을 삽입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유명한 치즈 '웃는 암소'의 용기 뚜껑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뚜껑 속 웃는 암소는 귀걸이를 하고 있다. 그 귀걸이 안에 다시 똑같은 귀걸이를 한 암소 그림이 들어가는 식이다. 하나의 시스템 안에 다시 하위 시스템이 발현함으로써 도무지 판단력을 수반할 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가 된다. 재밌지만 무한대 반복으로 현기증을 나게 한다.
증시 테마주 열풍을 보면 이제 주식투자도 미장아빔의 기법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A기업이 정치테마주로 부상하면 그 안에서 언뜻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정치테마주가 생산된다. 그래서 유력 대선 잠룡들과 옷깃만 스쳐도 주가폭등이 일어나고 투자자들은 앞뒤를 재지 않은 채 무한투자열풍에 몸을 던진다. 심지어 기관과 외국인들마저도 이런 세태를 이용해 '짧게 먹고 나오자'며 거래량을 늘리고 있으니 개인투자자들이 이 바람에 맞서 어떻게 냉정한 투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금융감독당국과 전문가들의 식상한 경고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런데 이해가 된다. 소위 개미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서까지(신용융자) 정치테마주 등에 투자하는 것은 '주식'이 통상 6개월을 앞서 있는 '경제주체 심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이 3%대라고 하지만 우리 집 앞에 프라이드 치킨 값이 15% 올랐다면 '3%'라는 숫자는 존재 의미가 없다. 주변 친구 10명 중 2명이 희망퇴직을 했다는 소식에 밀려오는 실업공포감은 통계청의 실업률 하락소식을 '다른 나라'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삼성전자 주가가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자신이 투자한 해외펀드가 마이너스인데 삼성전자 주가 111만원이 가치를 가질 리 없다.
경제양극화는 주식투자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개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우리 아이 학원비, 올라갈 기미 없는 내 월급의 상실감을 채우고 싶은 심정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앨리스는 카드게임의 붉은 여왕과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달리지만 주변경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여왕은 말한다. "제자리에 남아 있고 싶으면 죽어라 달려야 해." 전진하지 않는 것은 곧 후퇴다. 제자리에 남아 있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주변의 다른 것들만큼 빨리 달려야 한다.

주식투자자들이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6개월 후의 불안감을 가슴에 품고 미장아빔의 현기증 속에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해'의 문제와 '옳고 그름'은 판단의 잣대가 명확히 다르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섬의 요정이다. 배가 지나가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선원을 유혹했고 배는 결국 바위에 부딪혀 파선하고 만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으라고 하고 선원들에게는 모두 밀랍으로 귀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선원들은 귀를 막은 덕에 묵묵히 정해진 항로를 향해 노를 저을 수 있었다.

대선까지 11개월이 남았다.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젓되 항로에 맞춰, 숨이 목에 차도록 달리되 트랙을 벗어나지 말자. 규율을 구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박성호 증권부장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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