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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명품 '무재고 마케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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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서 세계적인 명품 제조업체 A사가 팔다 남은 재고를 할인해 팔지 않고 모두 모아서 불태웠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회사 마케팅 담당 간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기 회사는 절대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전통이 있고, 차별화된 고객 관리를 위해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제품은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적인 명품 제조업체들은 안 팔리는 이월상품이 생기면 전량 본사에서 모아 폐기처분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언론까지 불러다 놓고 재고품을 공개 소각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고객들에게 '진품은 제값을 주고 사야만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명품 가방의 바겐세일을 기다렸다 사겠다는 소비자들에게, 그랬다간 가방 구경을 아예 못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 위한 이른바 '무재고(無在庫)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A사 마케팅 간부는 자기들만의 차별화된 고급 영업방식을 홍보한다는 뜻에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이겠지만 내심 씁쓸했다. 그리고 알지 못할 분노가 치밀었다면 필자의 기질이 너무 다혈질이어서일까?

A사는 명품은 명품답게, 보석은 보석답게 팔아야 더 잘 팔린다는 명품마케팅의 기본 원리에 충실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최고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재고품을 불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통념으로 보거나 필자 개인의 소신으로 봐도 A사의 지극히 소모적이고 반사회적인 영업전략에 절대로 박수를 보낼 수가 없다. 불태워 버릴 명품 제품을 사회 환원 차원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소각할 명품 제품에 기프트 마크(기증 표시)를 부착해 이를 파격적인 할인 가격에 팔아 그 수익금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필자의 생각이 순진하고 너무 진부한 것일까? 하지만 때로는 가장 유아적인 생각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경우를 적잖이 보았다.
다량의 명품 제품을 불태울 경우 환경 오염은 물론 자원 낭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 명품 제품 폐기와 소각이 명품 제조사들의 고수익을 위한 '천박한' 마케팅 전략이라면 비난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어떤 경우라도 귀한 자원이 이런 교만하고 독선적인 이유로 낭비되는 것은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지구촌 모두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없어야겠다.

며칠 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쟁점이 됐던 박원순 후보의 대기업 기부금 수수 문제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대기업 기부금이 흠이 있는 물건(돈), 즉 순수하지 못한 불순한 의도가 있을 수 있는 자금이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박 후보의 말대로 과연 누구에게 기부를 받아야 할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빈부를 떠나 사회 전체가 순수한 마음으로 십시일반해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부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소명이 불우한 이웃 돕기인 종교조차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가진 자(대기업)들이 설령 다소 떠밀린 감이 있다 하더라도 솔선수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의(大義)를 위한 일이라고 하겠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 가는 사람의 의관이 먼지 묻고 땀에 젖어 남루하다 하여 손가락질해대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재고품을 싼값에 팔아 그 수익금을 소외 계층에 기부하지 않고 모두 불태우는 명품 제조업체의 자기 과시 또는 자기 독선이나, 대기업의 기부금은 무조건 '때 묻은 돈'이라고 판단해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준 것을 문제 삼아 역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나 프레임은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김언식 DSD삼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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