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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 감독 “<무산일기>는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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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 감독 “<무산일기>는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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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기쁨을 준만큼 또 많은 숙제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이. 지난 4월 14일 개봉한 영화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에게 친구 전승철 씨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탈북자였고, 절진한 친구였고, 이제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에 없는 그 남자는 박정범 감독에게는 아프지만 기어이 풀어야하는 숙제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뒤늦게 영화를 시작한 이 사람이 데뷔작의 스크린 위로 탈북해 남한사회에 적응해 가는 ‘승철’이라는 남자를 호령해 온 것은 그의 말대로 운명, 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산일기>의 미덕은 가장 사적인 기억이 많았을, 그래서 더욱 애틋했을 전승철이란 남자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하지도 과도하게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 덤덤한 회고야 말로 인생의 한 시기를 함께 보낸 어떤 인간에 대한 가장 신실한 영화적 예의일 것입니다. ‘인터뷰 100’의 테이블 너머 “서울 압구정동에서 자란” 듬직한 남한 총각이 앉아 있습니다. 아니 그 옆에 함경북도 무산에서 자란 승철 씨가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0: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로테르담, 도빌, 홍콩, 앞으로 도 코펜하겐, 트라이베카,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등등 스케줄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 또 지난 16일에 폐막한 폴란드 오프 플러스 카메라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10만 달러의 상금을 받으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행복하시겠어요. 축하드립니다.
박정범: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외 영화제 일정들이 있어서 개봉 주에 관객과의 대화를 많이 못해서 그게 아쉬워요. <혜화, 동> <파수꾼>을 따라잡으려면 부지런지 해야 하는데 휴우- (웃음).

“승철이 바가지 머리를 한 이유는...”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는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 원본보기 아이콘

100: 체육교육을 전공하셨고 영화에는 늦게 눈을 뜨셨다구요.
박정범: 무식쟁이였어요. 매일 아침 눈 뜨면 달려야 되는 줄 아는. 운동을 하루 8시간씩 했으니까. 체육교사가 되겠다고 들어간 대학에서 교양수업 들으면서 무시 많이 당했죠. (웃음) 그래서 오기가 생겨서 도서관에서 인문, 사회, 역사, 잡지, 만화책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군대에서 영화에 대한 마음을 먹게 되었고 이쪽엔 뭔가 소질이 있나 했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7년 동안 거지생활 했죠. (웃음) 그런데 포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단편이라도 몇 편 찍고 나서 그만둬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흔 살까지로 마지노선을 잡았는데 운 좋게도 몇 년 남겨두고 영화를 찍게 되었던 거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웃음)

100: <무산일기>는 실재 탈북자였던 친구 전승철씨의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박정범: 예, 승철이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했어요. 거창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영화가 아니었어요. 그냥 이 사람을 봐라. 이렇게 변해간다. 이게 누구의 탓이냐. 그래서 저는 <무산일기>를 ‘사소설’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기록을 담은, 하지만 그 개인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탈북자라는 것 때문에 어떤 분들은 소재주의 영화라 생각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려고 노력했어요. 승철이가 본다고 해도 자기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보니 일기 같은 영화를 쓴 거죠.

100: 지금까지 만난 관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어떤 것이었어요?
박정범: 로테르담 영화제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이야기 할게 있다고 데려가더니 “내가 이곳에 1970년대에 이민왔다. 나는 터키 사람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 같은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정착해 살고 있다. 이 영화는 나의 과거다” 라고 하는데 아, 이게 우리나라의 탈북자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겠구나,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100: 관객의 입장에서 <무산일기>를 통해 만나는 승철은 남한 사회에 적응해 가는 잔뜩 움추린 모습이지만 과연 이 남자가 북한에 있었을 때는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이 남자의 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머리 속에 그린 것들이 있으신가요?
박정범: 실재 승철이는 한국에서는 너무 쾌활하고 밝았어요. 과거를 잊고 대학생활하며 새 삶을 부여받은 거니까. 물론 암투병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승철이 집도 사실 ‘고난의 행군’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불어닥친 경제난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아사한 시기) 전에는 살만했데요. 자기네 집 처마에 고기를 널어놓고 육포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는 친구니까요. 그러다 가뭄에 물난리에 농사도 제대로 되는 게 없고 급기야 길거리에 죽어 있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처음엔 동네 이씨 아저씨가 죽었어 빨리 묻어줘야지 하다가, 점점 실종자 사망자들이 만연되니까 이제 길거리에 누가 죽어도 아 김씨 아저씨가 죽었네, 그러고 그냥 지나가게 되더라는 거예요. 영화 <두만강>에도 표현되었지만 그게 정확하게 제가 그들에게 들었던 북한의 현실이기도 했구요. 그러다 첫째 형이 홀로 탈북하면서 이 집안이 갑자기 반동분자가 된 거예요. 평양에서 아파트에 살던 가족이 아오지쪽 샛별마을이라고 유배지가 있어요. 거기서 집단농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산거죠. 그렇게 탈북하는 과정을 겪고 나서 이 친구가 눈을 위에서 아래로 치켜뜨는 버릇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영화에도 승철이의 그 특이한 눈빛을 넣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영화가 희화되거나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런 바가지 머리를 선택하게 된거죠. 뭔가 외모의 불협화음을 만들어 보려구요.

100: 실제 전승철 씨와는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박정범: 먼저 남으로 넘어온 승철이 형과 제가 엄청 친했어요. 형은 과동기고 아이스하키를 했던 승철이는 과후배로 들어온 거죠. 제가 영화한다고 해서 같이 부천도 가고 전주도 가고 부산도 가고 영화제 전국일주도 했죠. 승철이가 여행 다니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북한에는 이동의 자유가 없잖아요.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던가봐요. 같이 다니면서 영화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자기도 영화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조감독 했던 영화에 제작부로 잠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러고 얼마 후 그 친구가 암인 걸 알게 되었죠.

100: 탈출에 대한 이야기도 혹은 북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그 과정 중에서 굳이 남한사회 적응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박정범: 인연 같은 것, 운명 같은 거겠죠. <두만강>의 장률 감독도 자기가 본 것 외에는 그릴 수가 없었다고 하시던데 저 역시 이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전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사실적으로 그릴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무산일기> 속 그 친구들의 일상을 제가 직접 목격했던 것이고 그대로 그릴 수 있는 것들이었죠. 그리고 이전의 삶이라는 것은 과거잖아요. 저는 지금 이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과거의 슬픔이나 고통이 현재에 여전히 잔존해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인지 탈출기를 찍는 건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어쩌면 본능적으로 제작비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웃음)

“그냥 누군가의 일상을 뜯어내서 콜라주 하듯이 만든 영화”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는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 원본보기 아이콘

100: 일단 실제 승철 씨는 그래도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영화 속 승철과는 환경적으로 많이 다른데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어떤 취재들이 이루어졌나요?
박정범: 승철이는 형도 있고, 다른 탈북자들과 비교하면 행복한 편이었죠. 취재는 아니고 승철이와 함께 만나던 친구가 열 댓 명 있었어요. 같이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런데 2, 3년 지나니까 몇 명 빼고는 다 미국으로 건너가 버리더라고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여기서도 거지인데 어차피 접시 닦아서 시간당 5천 원 받느니 거기 가서 만 원 받겠다는 거예요. 국가에서 나오는 임대 아파트를 세를 주고 자기들은 더 싼 집에서 살고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그 돈으로 생활비 쓰고 교회에서 보조금 받은 걸로 사는 거죠. 다들 술고래들이예요, 어이구. (웃음) 다양한 탈북자들의 모습을 봤죠. 탈북자들도 계급이 있거든요. 고위직에 있던 분들, 즉 남한에 줄 수 있는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보상금을 많이 받고, 아무것도 없이 집단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기본 정착금만 받고. 그런데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정착금도 없어졌어요. 임대아파트만 준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정착금 4천만 원 받은 사람은 두세 달은 서울의 쾌락에 빠져 살다가 다시 거지가 되는 과정을 다 겪거든요. 강연 한번 나가면 몇 십만 원 주는데 그게 초기에 몇 달이지 그 다음엔 없어요. 그러다 나중엔 힘들게 사는 거죠. 공산주의 체제의 나태함이 배어있기 때문에 아주 힘든 일은 안 해요. 경쟁에 약하고. 삶에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도 별로 못 봤어요. 아이러니죠.

100: <무산일기>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란 말이죠. 극영화 작가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욕심, 즉 주인공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승철이를 동정 할 수 있는 혹은 그의 삶을 더 비장하게 만들 요소들을 아예 제거시켰다는 느낌이 있어요.
박정범: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우리들 모두의 일상이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겉으로 드라마틱하게 보이진 않잖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타인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관찰하는 거예요. 이 사람이 하루를 사는 모습을 쭉 보면 아 어떤 사람이구나 이해하고 접근하게 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현실은 그런 것 같아요. 관찰하고 질문을 가지게 되는 속에서 드라마가 생기는 것이지 인물이 자신의 상황을 일부러 보여주지는 않아요. 어떤 개인도 자신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살진 않잖아요.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억지로 감동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있다면 가짜 같을 것 같아요. 물론 장르영화처럼 그런 게 필요한 영화들도 분명 있지만요. 그냥 누군가의 일상을 뜯어내서 콜라주 하듯이 만든 영화, <무산일기>는 그래요.

100: 승철은 얼굴의 변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인데 오히려 풀샷을 잡았을 때 그 사람의 감정이 제일 잘 보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박정범: 그건 영화 속 승철 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하철이나 지나가는 행인을 봤을 때 그 어떤 사람도 표정이 없어요. 다 무채색이라고. 도시가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오히려 떨어져서 인파 속에 있는 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느껴져요. 승철이를 보세요. 그 많은 사람들 안에서 겉돌고 있는 모습에서 그 친구의 외로움이 보이는 거죠. 승철은 다른 이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도 않아요. 본능적으로 세상에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슬픈 거죠. 우리는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고 어쨌든 전화한통 걸 사람이라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전화 걸 사람은 형사밖에 없어요.

100: <무산일기> 전에 찍은 단편 <125 전승철>이 승철 씨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박정범: 사실 영화제에는 안낸 30분짜리 영화가 하나 더 있어요. 그 영화에 실제 승철이와 제가 배우로 등장해요. 저는 남한친구고 그 친구는 탈북자 역할로. 술이 만취한 탈북자들이 설날에 술 마시다가 난데없이 다들 가리봉동에 가자고 외쳐요. 탈북자라는 이유로 실직된 회사에 자리에 들어온 사람이 모든 조선족이라는 거죠. 결국 술 취해서 다 같이 가리봉동에 가서 사건이 크게 터진 거죠. 실제 있었던 일인데 이걸로 극영화를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형편없이 찍어서 서랍 속에 몰래 숨겨놨는데 뒤 늦게 본 스태프들이 재밌다고 해서 혹시 <무산일기>가 DVD가 나오게 된다면 뒤에 그 영화를 꼭 붙이고 싶어요.

100: 탈북자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25’로 시작된다는 건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어요.
박정범: 하나원이 있는 경기도 안성 주소에서 나온 건데 남자는 125, 여자는 225. 그러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125는 탈북자니까 중국비자를 주지 말라는 지령이 떨어졌데요. 그때 ‘남한 125’들이 화가 난거예요. 통일부하고 외교부에 진정서를 내서 결국 작년에 이게 바뀌었어요. 이제는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나와서 처음 정착한 곳을 기준으로 주민번호를 주는 거죠. 과거에 125로 시작되는 번호는 신청하면 바꿀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00: 지금이야 <무산일기>가 평단의 호평뿐 아니라 해외영화제에서도 수상으로 그 가치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태지만 찍을 당시에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서 이 작품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 같은 게 필요했을 것 같아요.
박정범: 항상 제 옆에는 좌청룡우백호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쪽 어깨 너머엔 승철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제가 영화 찍는 중에 자살한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같이 살았고, 매일 이야기하고, 이 두 친구가 저에겐 거의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거든요. 일 년 차이로 두 명이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영화를 찍는데 쓰러질 수가 없는 거예요. 친구들 생각하면서 힘을 냈어요.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 생각도 많이 났구요. 위기의 순간마다 이창동 감독님을 생각하면서 감독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했어요. 그분을 조감독으로 모시고 있었던 동안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분이라면 이 순간 이런 결정을 내리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기작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연기할 것”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는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 원본보기 아이콘

100: 어떤 모습인가요.
박정범: 어떤 것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부분. 저 역시 그런 걸 많이 찾으려고 했고 덕분에 스태프들이 많이 힘들어 했는데 보람은 있었죠. 그렇게 한 컷 한 컷 찍으면서 모두가 만족해하면서 찍어갔던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스태프들을 만나고 이런 스승님을 만난 것 보면 정말 복이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아니면 <무산일기>는 불가능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100: 이창동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박정범: 미장센영화제 뒤풀이에서 <밀양> 조감독 형을 만났는데 이창동 감독님 다음 작품에 조감독 안 해볼래?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일생의 영광이라고 했죠. 얼마 후 면접을 봤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니가 조감독 해라, 하시던 순간이 제가 죽을 때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 것 같아요. 앞에선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우와- 정말 너무 좋다.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어요.

100: 함께 작업을 하면서 지켜본 이창동 감독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 다르시던가요?
박정범: 소문대로였어요. 그야말로 장인이죠. 늘 고뇌하고 고민하고 그러나 흔들림 없고. 무언가를 짊어지면 끝까지 가는. 배우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해석하고 해결하시는 것 까지도. 시야가 멀고, 마음의 넓이가 넓고.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인품이 대단하시고 그게 곧 그 분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아요.

100: 이창동 감독님은 <무산일기>를 보고 뭐라고 하셨어요?
박정범: 네 글자. 수.고.했.다. (웃음)

100: 주연을 맡은 배우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건 아마도 강아지 ‘백구’였던 것 같아요.
박정범: 모란시장에서 제일 착해 보이는 얘를 찾아서 왔는데 정말 잘해줬죠. 영화끝나고 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인가로 내려온 산짐승들하고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100: 감독으로 시나리오 쓰고 연출하면서 승철 씨를 계속 떠올리셨겠지만, 배우로 연기하면서 내가 죽은 승철이와 만나고 있구나, 느꼈던 오묘한 순간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정범: 엔딩 찍을 때 그랬어요. 죽은 개를 쳐다보고 있는데 내가 승철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 개가 승철이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오래서있었던 것 같아요. 개 시체를 보는데 승철이가 암투병하다가 죽었을 때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마지막 촬영 날이었는데 사실 그때 울고 있었어요. 영화 찍을 때는 영화 속 승철이만 생각했지 실재 그 친구를 떠올릴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그 순간 뭔가 밀려오더라고요. 개가 혀를 내밀고 죽어있는 모습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때 아마 승철이가 저랑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가... 기적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만들면서 어려움도 많았고 저희 어머니가 4개월에 걸쳐서 스태프들 밥을 해서 날라주셨어요. 추위에 떨고 72시간씩 좀비처럼 잠도 못잔 상태로,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 닦으면서 다시 촬영가자! 하고 나가고. 거의 미친 듯이 찍었죠. 어떻게 이렇게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요. 차기작 <산다>도 그 스태프들이 그대로 가는데 이번엔 돈을 좀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0: 단편부터 <무산일기> 차기작 <산다>까지 직접 연기를 고수하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박정범: 혹자들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거 아니냐, 하시지만 (웃음) 그런 건 아니고. <무산일기>는 당연하고 차기작인 <산다>까지는 제가 연기를 해야 할 의무감 같은 게 있어요. 실제 모델에 대한 의리나 미안함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언제나 저는 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캐스팅되는 것이 그 영화에 누가 되거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안할 거예요.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캐스팅하겠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떤 약속을 지키는 느낌이 있어요. 위험한 장면도 많고, 맞는 장면도 많구요. 다음 영화는 거의 액션영화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끼들고, 4층에서 떨어지고. (웃음)

100: <산다>의 이야기의 발화점은 어디인가요?
박정범: 늘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부계사회의 희생양이 바로 남자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희생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가운데 폭력이 재생산 되요. 결국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가부장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진행시키던 중 친구의 자살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가 들어가게 되었고 그게 하나로 반죽된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산다>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거죠. 죽어라 죽어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대로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남자들 이야기죠.

100: 그런데... 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죠?
박정범: 왜나면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니까. 모든 인간은 고귀하다는, 아니 그래야 한다는 믿음을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엔 자살한 친구의 주검 앞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그 친구에게 할 말이 생각이 났어요. 그걸 영화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죽음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 생각을 거두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찍으려고 해요. <무산일기>가 ‘살아간다, 이것을 봐라’하는 영화였다면 <산다>는 ‘같이 한번 살아보자’하는 영화가 될 거예요. 또 다시 저와 저희 아버지(<무산일기>에서도 탈북자들을 돌보는 아버지같은 형사로 등장했다)가 주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홈비디오’라고 놀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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