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개월간 재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던 '이건희 카드'는 이 한마디로 물거품이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차기 회장 구도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고 전경련의 전략 부재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건희 카드'를 잃은 전경련은 쓴 입맛만 다시고 있다.
이 회장의 고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해 9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출국하는 길에도 "일이 하도 많고 몸도 별로 안 좋고"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두달 전 승지원에서는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삼고초려에 실패한 전경련은 다급해졌다. 오는 13일 회장단 회의에서 후보군이 정해지지 않으면 2월 총회에서 회장 선임 절차를 밟기 어려워 회장이 공석인 초유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경련 회장이 상징적인 자리라는 점에서 고집스런 '이건희 구애'는 자기부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이 거듭 고사의 뜻을 밝히고 있는 데도 전경련이 막무가내식 매달리기로 일관한 것은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잠재 후보군 확보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전경련의 경쟁력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는 것은 '전경련 무용론'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회장이 누가 되느냐보다는 재계 대표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물거품이 된 '이건희 카드'가 전경련에 남긴 교훈이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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