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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한국에 온 이유]⑪사랑밖에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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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쟈스민씨, 다른 것보다 우리 사랑에 주목해주세요

[아시아경제 고정수 기자] 그녀의 얼굴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큰 눈을 깜박이며 한국어로 명쾌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화려한 이력에 대한 선입견도,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도 들어갈 틈이 없어보였다.

쟈스민(여·34)씨는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 남성과 14년 전 결혼했다. 그녀의 이력은 진정 눈부시다. 필리핀의 수학능력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으며 의대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열두 살 차이 나는 지금의 남편과 한국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중학교 1학년인 아들도 두었다. 아이들의 교육마저도 순조롭다는 그녀의 말에 단단함이 배어나왔다.

◆첫번째 남자가 마지막 남자가 돼

쟈스민씨는 연애결혼을 했다. 당시 항해사였던 남편이 의대생이었던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꼭 의사가 되고 싶었고, 남편이 나이차도 많이 나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성년의 날'을 맞았다. 필리핀 여성에게 성년의 날은 가장 큰 행사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열여덟 번 째 생일을 성년의 날로 하고 남성들을 초대한다. 초대받은 남성들은 장미를 선물하며 그 날의 주인공인 여성과 춤을 춘다. 그리고 춤을 같이 춘 남성들은 여성에게 '의미 있는 남자'가 된다. "남편도 저와 춤을 췄어요. 그런데 결혼까지 했으니 첫 번째 남자가 마지막 남자가 된 셈이죠."

◆늘 기다려 준 남편

성년의 날에 춤까지 같이 췄어도 쟈스민씨는 남편을 결혼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매일 그녀의 수업이 끝날 때 마다 그녀를 기다렸다. 남편의 애정공세에 지친 그녀가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도 남편은 묵묵히 그녀의 승낙을 기다렸다. 오히려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가 "교제 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이런 사랑에 감동받은 쟈스민씨는 남편과 1995년 결혼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시댁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필리핀에선 이혼이 없다. 호적에 기록될 수 있는 남편은 한 명 뿐이다. 그녀와 남편은 이 모든 제약을 넘어 사랑을 선택했다. 또한 그녀는 서로 사랑했기에 남편의 뜻에 따라 한국행에 올랐다. 사랑만이 쟈스민씨에게 엘리트 의사의 길을 버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유였다.

◆한국에서의 적응, 모두 노력으로 이뤄

그녀는 매우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어학원에는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달리 원래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어 기본 교재를 사서 읽었어요. 어학테이프도 듣고요. 저처럼 반복해서 공부하면 다문화인 누구나 한국어를 잘할 겁니다." 진정성과 자신감이 섞인 대답이었다. 그녀는 "노력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이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랑으로 살아왔듯 사랑으로 미래를 보겠다고 했다. 그녀에겐 사랑 하나면 충분했다.

고정수 기자 kjs09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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