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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토크]'원천기술 갑' ARM, 왜 칩 만들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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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앞둔 ARM, 가격 인상 '만지작'
고객사 불만이 난관…가치 입증이 관건
자체 칩 성능 입증하면 시장 평정 가능

반도체 설계도 기업으로 유명함 암 리미티드(ARM limited·ARM)가 독자적인 시스템 반도체 완제품을 설계 중입니다. 다른 반도체 설계 기업에 설계도와 기술만 대여해 주는 기존 ARM의 사업 모델을 고려하면 이질적인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물론 ARM이 당장 자체 칩 브랜드를 만들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ARM은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반도체 산업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니까요. 그렇다면 ARM이 자체 칩 제작에 착수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천기술 장악한 ARM, 자체 칩 설계 나섰다
ARM 리미티드 로고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RM 리미티드 로고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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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간) 영 금융 매체 '파이낸셜 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ARM은 현재 사내에 '솔루션 엔지니어링 팀'을 신설하고 독자적인 컴퓨터 칩을 설계 중입니다. FT는 반도체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이 칩이 "이전의 어떤 제품보다도 기술적으로 진보"했다고 합니다.


실제 ARM은 자체 칩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도체 설계 기업 퀄컴에서 '스냅드래곤' 칩을 개발한 케보크 케치찬을 지난 2월부터 영입해 솔루션 엔지니어링 팀의 총괄을 맡긴 상태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사실 기존 ARM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하면 다소 이질적입니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흔히 직접 칩을 만드는 파운드리(위탁생산), 그리고 팹리스(칩 설계)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ARM은 팹리스에 칩 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설계도, 즉 '원천기술'을 판매하며 성장했습니다.

ARM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모든 칩의 골자가 되는 아키텍처 선행 라이센스, 그리고 실제 칩 내부에 탑재되는 '코어' 디자인을 파는 로열티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칩 회사가 ARM에 라이센스 요금을 낸 뒤 아키텍처 사용권을 얻고, ARM제 코어를 칩 안에 배열해 완성품 칩 설계도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모두 'ARM 생태계'에 속해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AP 시장의 9할 이상은 ARM 칩으로 사실상 독점 생태계라 해도 무방합니다.


안정적이지만 성장 느리다…ARM 사업 모델의 딜레마
ARM은 기술 아키텍처 라이센스와 코어 디자인 로열티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미지출처=ARM]

ARM은 기술 아키텍처 라이센스와 코어 디자인 로열티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미지출처=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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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의 비즈니스 모델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빠른 매출 확장을 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과거 ARM의 주력 사업이었던 라이센스에서 문제가 두드러집니다.


ARM은 여러 고객사와 협상을 통해 ARM 아키텍처의 사용권을 수개월~연 단위로 판매합니다. 그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오픈소스 아키텍처 'RISC-V(리스크-V)'가 2010년 탄생한 뒤로 라이센스 사업 모델이 흔들렸습니다. 리스크-V의 확장을 막기 위해 구식 ARM 아키텍처 라이센스 비용을 낮추거나, 무료로 푸는 등 저가 공세를 펼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2014년 ARM의 수익 구조를 보면, 라이센스 매출과 로열티 매출이 50:50으로 거의 동등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론 라이센스 매출(11억달러)이 로열티 매출(15억달러)보다 확연히 뒤처집니다. 이 추세는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대신 ARM의 성장을 이끌어온 사업은 시스템 반도체의 코어, 즉 로열티 매출이었습니다. 중앙처리유닛(CPU)은 여러 개의 코어를 집적해 만드는데, 퀄컴·삼성·화웨이 등 ARM 기반 CPU를 설계하는 기업들은 이 코어 디자인을 ARM으로부터 구매해 칩을 설계합니다.


코어 로열티는 라이센스처럼 협상을 통해 사용권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칩 매출액의 일부를 ARM에 환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도체 호황기에 더 직접적인 수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ARM의 신성장동력…로열티 매출 높여라
그래픽처리유닛(GPU) 설계사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레이스호퍼' 슈퍼칩. 이 가운데 그레이스 칩은 ARM 네오버스 V2 코어 144개를 배열한 고성능 칩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지출처=엔비디아]

그래픽처리유닛(GPU) 설계사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레이스호퍼' 슈퍼칩. 이 가운데 그레이스 칩은 ARM 네오버스 V2 코어 144개를 배열한 고성능 칩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지출처=엔비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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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열티 사업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통상 ARM의 로열티는 칩 판매가의 1~2% 수준에 불과합니다. ARM 입장에서는 매년 수천억개씩 팔려나가는 'ARM 반도체' 생태계 전체 매출 중 티끌만 한 분량만 떼가는 셈이니,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ARM의 오너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올해 뉴욕 증시에 ARM을 상장할 계획입니다. 증시에서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으려면 ARM은 지금 이상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FT는 지난달 반도체 업계 소식통을 인용, ARM이 곧 로열티 가격을 대대적으로 인상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로열티 가격을 칩 판매가의 10%까지만 끌어올려도 ARM의 매출은 적어도 5배 이상 폭증합니다.


또 ARM은 현재 '모멘텀'을 타고 있습니다. 최근 ARM 코어는 서버용 CPU, AI용 칩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ARM의 고성능 CPU 코어 시리즈 '네오버스'는 세계 최대 클라우드 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 AWS의 '그래비톤'에 탑재돼 활약하고 있으며, 엔비디아도 최신예 네오버스 V2 코어 144개를 탑재한 AI용 CPU '그레이스'를 내놨습니다.


ARM 입장에서는 시장도 확장하고 매출도 증대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팹리스들 불만이 우려 사항…'자체 칩'이 성능 입증해야
자회사인 ARM의 뉴욕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자회사인 ARM의 뉴욕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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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RM이 섣불리 로열티 가격을 올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ARM의 주요 고객들이 불만을 터뜨릴 테니까요. 고객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ARM 스스로 '로열티의 가치'를 직접 입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현재 ARM이 사내에서 개발 중인 '자체 칩'이 중요해집니다.


만일 ARM이 자사의 새 기술을 총집약한 자체 칩으로 '게임 체인저'가 될만한 성능을 입증한다면, 당연히 설계 기업들은 가격 증대를 납득하고 여전히 ARM 생태계에 남아 칩을 디자인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는 리스크도 따릅니다. 가장 큰 위험은 무료라는 강점을 앞세운 리스크-V가 단숨에 ARM의 고객들을 가로챌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칩 설계 업체들도 그간 ARM의 설계 기술에 의존해 온 만큼, 완전한 이탈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어찌 보면 반도체 설계 시장의 구도에 거대한 변동을 가져올 경주가 펼쳐진 셈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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