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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에 속전속결…크레디스위스 초고속 합병은 "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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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원칙마저 무너져
미 로펌 집단소송 움직임

스위스 정부 중재 하에 초고속으로 이뤄진 UBS와 크레디스위스(CS)의 합병이 시장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면서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합병 과정에서 정부의 가장 확실한 패인은 수십년간 가장 안전한 금융 중심지로 평가받던 스위스 금융시장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CS를 UBS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정부가 경쟁법과 주주권이라는 시장 경제의 대원칙을 크게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위스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하던 UBS로의 합병은 논란이 불거진지 닷새 만에, 협상이 시작된 지 단 이틀 만에 초고속으로 이뤄졌다.

인수가격, 정부 보증 등 협상 포인트마다 당사자와 협상 중재자인 정부 간 이견이 크게 갈렸고, 의견접근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이어졌다. 하지만 난공불락과도 같은 협상은 이틀 만에 초고속으로 타결됐다. 외신들은 그 배경으로 스위스 은행시스템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한 스위스 정부의 절박함이 작용했다고 짚었다.


스위스 정부는 아시아 증시가 개장하기 전까지 주말 안에 거래를 마무리 짓기 위해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와 정부 자금 지원안에 대한 의회 논의 등을 모두 생략했다. 스위스 현지 규정은 정부가 5억스위스프랑(약 7030억원) 이상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의회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절차를 무시한 채 CS와 UBS의 합병에 최대 1000억스위스프랑의 추가 유동성을 제공하고 최대 90억스위스프랑의 정부보증을 약속했다. 또 인수 승인을 위해 주주들에게 6주간의 논의 시간을 주도록 한 규정도 무력화했다.


전날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합병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스위스 금융당국인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의 마를린 암스타드 의장은 "재무 안정이 경쟁 이슈를 우선한다"고 답했다.

통합 작업은 연내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주요국 반독점 규제 승인 절차가 변수로 남아있다. 이번 합병으로 자산규모 1조6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면서 반독점 여부도 불씨가 될 전망이다. 합병 후 UBS의 자산규모는 골드만삭스의 총자산 규모 1조44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며, 운용할 투자자산 규모도 5조달러(약 6500조여원)에 달한다.


이번 합병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채권 가운데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 하기로 한 결정도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위기 시 원리금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기존 채권 보다 수익이 높은 '코코본드'로 불리는 채권이다. 글로벌 대형은행 가운데 재무 위기로 채권을 강제 상각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에 충격파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합병을 계기로 법적 불확실성이 낮아 안정적인 채권·주식 투자자들의 피난처로 통했던 스위스에 대한 불쾌한 진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자산가들이 스위스 은행으로 몰려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변수가 예측 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합병은 이 같은 스위스 금융시장 경쟁력의 근간을 흔들었다.


경쟁법과 주주권을 경시하는 이 같은 졸속 합병은 '바나나 공화국(독재·부패 등으로 정국 불안을 겪는 국가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에서는 벌어지는 일이라는 논란을 자초했다. 케른 알렉산더 취리히대학교 법학금융학과 교수는 "스위스 정부의 위기 관리는 법치를 훼손하고 스위스의 금융시장 지위도 훼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패닉"이었다고 일갈했다.


이번 합병은 송사 리스크로도 번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소재 다국적 로펌인 퀸 엠마누엘 어쿼트 앤드 설리번이 채권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안 소송 진행을 위해 취리히, 뉴욕, 런던 지사 대표 간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이사회 의장(왼쪽)이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콜름 켈러허 UBS 회장 옆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이사회 의장(왼쪽)이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콜름 켈러허 UBS 회장 옆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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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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