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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당신의 오늘 하루도 홈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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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당신의 오늘 하루도 홈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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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지방의 야구장에 다녀왔다. 집에서 오가는 데 4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야구를 보기 위해서 간 건 아니었다. 강의가 있어서 갔던 곳 인근에 야구장이 있었고, 정확히 야구 경기가 시작할 즈음에 강의가 끝났고, 공교롭게도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1회가 시작되었을 때 집에 있을 9살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 어디서 뭐해.“

나는 그에게 일을 하고 있으며 오늘은 늦게 끝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을 보내왔다. 아이는 요즘 리틀야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포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몇 번 야구장에 함께 가면서 그는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팀을 좋아하게 되었다.


경기는 점수가 별로 나지 않고 투수전으로 흘렀다. 나의 팀이 1:0으로 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약속의 7회'에 이르러 동점을 만들었다. 2번 타자가 동점타를 치고 그의 응원가가 나오는 그 순간 나도 곁에 있던 모든 사람도 와아, 하고 소리 질렀고 그 선수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그리고 그때 아이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아빠, 야구장에 있는 거 다 봤어. 일한다더니 거기서 뭐해."

그래, 아무래도 내가 좀 과하게 좋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보니 원샷으로 몇 초 동안이나 나왔다.

야구는 사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깟 공놀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공놀이하는 것을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마치 인생인 것처럼 과하게 몰입하기도 한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사실 야구가 아니라 야구를 하는 사람을, 그리고 야구를 보는 자신을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관중석은 경기장과 외부의 경계다. 거기에는 저 선수가 출루를 하면 좋겠다, 너희가 이기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야구장을, 정확히는 야구장의 관중석을 찾는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내가 그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야구처럼 한 사람의 이름을 수십 번이나 외치며 계속 응원할 수 있는 스포츠를 나는 알지 못한다.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 적게는 3번 많게는 4~5번까지 타석에 들어선다. 그때마다 선수의 등장곡이 나오고, 응원가를 부르고, 그의 이름과 함께 안타나 홈런을 쳐달라고 외친다.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 양 팀을 합쳐 54개의 아웃 카운트, 각각 15번씩 출루한다고 하면 80여 번의 타석이 있다. 그때마다 20번씩이라고 하면, 사람의 이름이 3시간 내내 1000번이 넘게 불리는, 아마도 유일한 공간일 것이다. 야구장의 나는 우리가 그렇게 타인을 응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감각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누군가를 간절히 응원했다는 사실은 몸에 새겨진다. 나도 나의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나는 종종 누군가가 '김민섭, 안타'하고 외치는 상상을 한다. 나에게도 관중석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들이 자신의 경기를 시작할 때면 역시 그들을 응원할 수 있는 관중석으로 간다. 포수를 꿈꾸는, 이제는 나에게 저녁마다 야구장이냐고 문자를 보내는 나의 아이도 매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며 자신의 경기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온전한 응원을 보낸다. 당신도 응원받으며, 또 누군가를 응원하며, 오늘도 출루하는 하루가 되길.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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