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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是非非] 한미 정상회담, '말하려는 것과 들으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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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백악관. 바이든 대통령이 주간업무계획 보고서를 펼쳤다. 마지막 장에 ‘금요일(21일) 남한 대통령 방문’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반도체 나라에서 손님들이 오는 구먼’이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이내 보고서를 덮었다. 다음 보고서를 집어 들려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라 생각에 잠겼다. "시진핑…."


그로부터 이틀 후, 청와대를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 머릿속에는 두 단어가 맴돈다. 백신과 북한. 그는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고 북핵 해법의 단초도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머리를 기댄 전용기 창문에 ‘정권 재창출’이란 단어도 스친다.

회담을 앞둔 양국 대통령의 모습은 상상에 기반한 것이지만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백악관은 회담 확정 사실을 전하며 "철통 같은 한미동맹을 강화할 기회"라고 했다.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북한 위협에 맞서’라는 뜻에 가깝지만 지금 미국에는 ‘중국 위협에 맞서’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과 마주 앉은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 보고 있나’라며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자, 이제 북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김정은과 언제 대화할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사실 미국의 ‘새 대북정책’이란 건 애매하기 짝이 없다. 요약하면 ‘트럼프식(式) 담판과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 둘 다 아니다. 면밀하고 실질적으로 외교적 해법을 강구한다’이다. 외교적 해법이란 당근과 채찍(대화와 제재)을 의미하는 듯하다. 북한이 변화 의지를 보인다면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할 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국의 접촉 시도에 반응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하고픈 문 대통령은 ‘대체 액션 플랜이 뭐냐’고 묻고 싶을 테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로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번 회담의 한계 지점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미 그 카드를 노출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과 대화하고 중국과 협력하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또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보냈다. 만일 백악관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그 문제는 한국의 다음 대통령과 이야기하겠소"라든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 포기한다면 난 상관없소"라고 답할지 모른다. 한미 정상 간 인식 차 노출을 가장 반길 사람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한국이 한·미·일 3각 공조에서 가장 약한 고리임을 확인한 그는 한국을 자신 쪽으로 더 끌어당길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미·중 사이 애매한 한국의 위치는 전(前)보다 더 애매해질 수 있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중요한 의제를 꺼내지도 말란 뜻은 아니다. 백신과 반도체·기후변화 등 분야에 집중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상견례 성격인 이번 회담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차후 협의를 위한 발판을 다지는 것만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판문점에서 역사에 기록될 별의 순간에 접근했던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같은 결실을 임기 내 확정지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과실을 다음 대통령에게 양보하는 것은 국익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 될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이 정권 재창출보다 중요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신범수 정치부장

신범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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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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