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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농업에서 발견한 사회적 약자 위한 좋은 일자리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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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

네덜란드의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 농장의 일꾼은 장애인들과 노인들이다. 노인이 괭이로 흙을 파면 장애 청년이 따라가면서 씨앗을 넣는다. 농장 한쪽에서는 병아리와 토끼를 돌보는 장애 청년도 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동물들을 소개한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14명의 저자와 함께 쓴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네덜란드 한 농장의 사례를 들며 시작한다. 이곳은 장애인과 노인이 함께 일하면서 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성취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농업과 복지가 결합된 '사회적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나라의 등록 발달 장애인은 2017년 말 기준 약 23만 명이다. 전체 장애인의 11%지만 일자리와 자립 훈련이 필요한 30세 이하 장애인 중 발달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로 꽤 높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발달 장애인 10명 중 8명이 집에만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800만 명에 달하는 65세 이상 노인들도 노후가 걱정이기는 마찬가지다. 노인 인구의 취업률 또한 30%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쓸모없어졌다는 인식 때문에 정서적 폐해가 심각하다.

우리의 현실과 네덜란드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 농장의 사례는 나란히 문제와 답의 자리에 놓인다. 문제는 제기됐고 이를 풀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됐다. 하지만 그 답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어쩌면 그 험난한 여정에 대한 안내서다. 따라가 보면 이내 '케어팜'과 만나게 된다. 농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른바 '치유 농업'이다. 유럽, 일본 등에서는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을 위한 복지의 한 형태로 보편화됐다. 유럽 전역에 3000개가 넘는 케어팜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다. 케어팜이라고 해서 농사일이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버거운 일을 장애인과 노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팜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푸르메소셜팜'이 대표적인 스마트팜이다. 푸르메재단이 마련한 장애인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은 500평과 200평 규모의 스마트팜 2개 동이 가동 중인데 15명의 발달 장애인이 근무하면서 식용 꽃, 블루베리, 딸기, 표고버섯 등을 재배해 판매한다.


여정은 일본과 유럽으로 이어진다.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교마루엔 농장에는 25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보조 기구를 제작해 장애인도 얼마든지 수월하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작업 환경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IT 기업인 이토츄테크노솔루션즈를 모기업으로 둔 주식회사 희나리의 경우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대신 여러 농가에서 부대 업무를 하청받아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현재 20여 명의 장애인이 8곳의 농가의 일을 맡고 있다. 네덜란드의 베쥬크 애그리포트 농장은 전 세계 스마트팜의 표준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매년 7000명 이상이 견학을 오는데 은퇴한 노인들이 투어 매니저로서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세계 곳곳의 스마트팜 사례는 데이터와 기술로 보완하면 장애인과 노인도 농장에서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스마트팜 기술로 농장과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팜 구축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들고, 케어팜의 수입 구조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노인과 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이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나름의 역할과 자긍심을 가지고 자립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목표는 선연하게 와닿는다. 책을 덮어도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일조할 것이가"라는 자문이 남는 이유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백경학 외 14인 지음/부키/1만65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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