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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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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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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란 무엇인가. MBC 새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늙은이나 선생님을 칭하는 은어”라는 꼰대의 사전적 정의를 시대에 맞게 수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이는 특정 직업인이 아니라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남에게 함부로 충고를 일삼는, 그 사람이 바로 꼰대다. ‘라떼는 말이야’ 혹은 ‘라떼 이즈 홀스’라는 유행어는 이 같은 꼰대의 태도를 조롱하는 데서 비롯됐다.


<꼰대인턴>의 주인공 이만식(김응수)이야말로 꼰대의 정석, ‘라떼는 말이야’의 교과서다. 지하철에서 흔히 마주치는, 노약자석의 젊은이들을 향해 다짜고짜 ‘자리를 양보하라’고 호통을 치는 이들에게서 하나의 표준 표정을 추출해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이만식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만식은 거기에 더해 자리를 양보한 청년이 쓰러져 실려 가자 “사내새끼가 빈혈이 뭐야. 하여간 요즘 것들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라고 막말을 얹는 사람이었다. 라면업계 1위 회사의 마케팅영업팀 팀장인 이만식은 오로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꼰대인턴>의 활력은 상당 부분, 배우 김응수가 너무나 실감 나게 구현하고 있는 꼰대 부장 이만식의 시대착오적 언행을 비웃는 데서 온다.

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늙은이”가 곧 꼰대라는 정의를 수정하면서부터 생겨난다. <꼰대인턴>은 지금 이 시대에, 나이가 더는 꼰대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한층 재미있어진다. 요즘에는 오히려 젊은 꼰대가 새로운 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꼰대인턴>의 또 다른 주인공 가열찬(박해진)은 소위 ‘젊꼰’의 문제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과거 이만식 팀의 새내기 인턴이었던 가열찬은 이만식의 온갖 꼰대질과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털고 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성공한 가열찬에게 생각지 못한 복수의 기회가 찾아온다. 퇴직 뒤 시니어 인턴으로 재취업한 이만식이 그의 아래 직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드라마는 가열찬이 이만식에게 그동안의 설움을 되갚아주면서 정작 자신이 그토록 혐오한 대상을 닮은 ‘젊꼰’이 되어가는 모순을 아프게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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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인턴>이 이만식과 가열찬의 관계 역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꼰대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남을 함부로 가르칠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꼰대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시절, 이만식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부장이요, 집에서는 기세등등한 가장이었다. 이만식이 부서 기획회의에서 가열찬을 향해 “인턴 주제에 뭘 안다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라고 의견을 일축하며, 연봉 인상을 기대하는 아내에게 “남자가 큰일 하는데 그저 돈돈, 한다”고 핀잔 놓을 수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배경에서 나온다. 바로 중산층 중년 남성 권력이다. 60대 노인이 되어 희망퇴직 당하고 난 뒤에야 이만식의 ‘꼰대력’은 한풀 꺾인다.


이는 가열찬에게서도 확인된다. 30대 중반 나이에 사내 권력의 정점에 오른 가열찬의 현 위치는 그가 이만식과 재회하기 이전에 ‘꼰대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된다. 겉으로는 “세상에 다시 없을 젠틀 상사”의 이미지를 고수하지만, 내심 20대 인턴 이태리(한지은)와 주윤수(노종현)의 시행착오를 비웃는 가열찬의 우월감 넘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꼰대의 그것이다. 가열찬은 불과 5년 전, 자기 역시 어설프고 미숙했던 20대 인턴 시절을 거쳤다는 사실을 아예 잊은 듯 군다. 이만식과의 재회는 가열찬의 권력에 잠재된 ‘갑질 유전자’를 폭발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 가열찬 역시 이미 꼰대의 길에 들어선 상태다. 꼰대는 그처럼 자성 없는 권력 위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탈(脫)꼰대’가 시대정신이 된 요즘, <꼰대인턴>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쉽게 빠지는 모순을 명쾌하게 타격한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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