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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은행 '탐욕'과 금융당국 '직무유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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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금융부장]2014년 4월15일,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10개 시중은행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당시는 은행,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곳곳에서 부당대출, 불법 계좌 조회, 비자금 의혹, 고객 정보 유출 등 대한민국 금융 시스템이 '총체적 부실'에 빠져 있을 때였다.


최 원장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금융회사와 경영진은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고 시장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퇴출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은행장 간담회는 간혹 있었지만 금감원장이 주요 은행장을 금감원으로 직접 불러들여 공개 질책한 것은 이례적. 몇 달 뒤 관련 사안과 연관 있는 금융사 임직원 수백 명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일부 금융수장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금융사가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리고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잇속만 챙겼으니 비난 받고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금융사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터. 당시 최 원장의 공개 경고는 감독당국의 관리가 부실했음을 자인하는 것과도 다름없었다. 그해 감사원은 금융당국의 업무태만과 부실한 관리ㆍ감독이 일부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며 관련 직원 문책을 요구했다.


2020년 1월16일. 은행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5년 만에 금감원 제재심이 열렸다. 대규모 원금손실을 부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서다. DLF는 고객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부르짖었던 은행들이 고위험성을 속이고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점에서 시장에 충격을 가져왔다. DLF 판매 은행장 중 일부에게는 3년 간 금융회사 취업이 금지되는 중징계도 사전 통보됐다. 금융당국은 은행 본점 차원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의 불완전판매로 이어졌다는 점을 경영진 제재 근거로 내세웠다.


금감원의 판단도 일리는 있다. 감독당국에 따르면 은행들은 기초자산 등이 유사한 상품을 공모 규제를 회피한 채 사모로 판매해 투자자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도 취약했다. 금융업에서 금융 사고는 종종 있게 마련이다. 금융업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감독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융업이 돈을 다루는 업종이자 규제산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5억원이던 투자 요건을 1억원으로 낮췄다. 규제 완화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은행업의 본업은 '돈 장사'다. 국내 은행들은 정부가 허가해 준 테두리 안에서 돈 장사를 했고 그 업을 영위하고 있다. 물론 탐욕을 버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돈벌이를 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외국 IB들을 통해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위험성을 경험한 만큼 금융소비자들이 안전하다고 믿는 은행들이 판매할 때는 더욱 보수적인 관리ㆍ감독이 필요했다.


DLF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기본 원칙을 벗어난 '하이리스크 로우리턴' 상품이다. 위험도가 높은 파생상품을 은행이 60%대, 증권이 20%대로 팔았을 때도 당국은 수수방관했다. 금융당국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 속에 판매한 상품이 '불완전판매'였다면, 이를 감독하지 못한 금감원은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제가 터지면 응당 조사하고 징계를 내리는 것이 감독기관의 임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규정에도 없는 근거를 들어 은행 CEO들에게 과도한 징계로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카드 사태, 글로벌 외환위기 등 대형 금융 사고들은 대체로 징후들이 있었다. 금융당국이 선제적 대응을 못하고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해 사안을 키웠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형태로 책임을 질 지 사뭇 궁금하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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