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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도, 희망도 전염시키는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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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수다] 리 대니얼 크라비츠의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평소 특별히 애국심을 못느끼던 이들도 이제 일본 맥주, 일본 화장품, 일본 브랜드 상품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여름 휴가는 물론 학교 수학여행지마저 바꾸고, 지자체나 각종 사회단체마다 '노 재팬(NO Japan)' 운동에 동참하노라 선언한다. 일본의 비상적인 경제보복 행위에 '저러다 말겠지'라는 비아냥까지 더해지니 불과 한달여 사이 우리사회의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돼 평범한 시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흐름은 과연 무엇일까?


원제 '이상한 전염(strange contagion)'에서 느껴지는 다소 부정적인 기운처럼 이 책의 시작은 2009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명문 학군 팰로앨토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서 출발했다. 한 고등학생이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몇 주 후 또 다른 학생이 기차에 뛰어들면서 불과 몇 달 사이 다섯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역 주민이자 과학전문 작가인 저자는 이 미스터리한 연쇄자살 사건이 '사회전염' 현상에 의한 것이라 보고, 그 실마리를 풀고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과거 사례를 조사하고 전문가들을 만난다. 성공을 갈망하는 유복한 엘리트 계층의 자녀들이 학점을 쌓고, 우등반에 들어가고, 스포츠와 특별활동, 봉사활동까지 채우며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무리하게 혹사당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부정적인 정서 전염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짚어본다.


그리고 과거 무고한 여성을 피해자로 만든 세일럼의 마녀재판에서부터, 미국에서 잇달아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 섭식장애 전염 등 망상과 두려움, 불안심리가 가져온 사회전염 현상들이 대중을 어떻게 장악하는지를 분석한다.


사회전염이 꼭 부정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출근길 무심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사는 사소한 행위 뿐 아니라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갖는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넘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새로운 매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들은 언제, 어떤 일이 촉매제가 돼 어떤 사회전염의 영향을 받을지 예상할 수조차 없다.

반대로 정직한 직업윤리,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같은 긍정적인 정서와 행동도 전염된다. 긍정적 전염이 사회에 퍼지면 부정적 전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서 전염에 절대 휘둘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부정적인 트윗보다 긍정적인 트윗에 두 배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결국 부정적인 사회전염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긍정적인 사회전염을 활용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수년이 지나도 또다시 연쇄 자살이 발생할 정도로 비극을 겪던 팰로앨토 사람들은 학업에 대한 압박과 두려움이라는 사회전염을 멈추기 위해 직접 나선다. 자살한 학생들의 모교인 고등학교에서는 뮤지컬 공연을 열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여러 자리를 마련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전염은 완전히 멈추지는 않지만, 대신 그만큼 '긍정적인 희망'도 퍼져 나간다.


결국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서,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택시 운전사에서 바리스타까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훈련을 받고 사회전염의 단속단이 되고 징후를 감시할 때' 과거와 같은 참극은 조금이나마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다는 게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개인이 서로를 돌보고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서로 영향을 주고 소통하다 보면 그 어떤 사회전염 속에서도 공동체가 의연한 버팀목이 돼 줄 것이라고 말이다.


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펴냄/ 1만6000원.

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펴냄/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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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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