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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제 시인이 된 것처럼, 망해 버린 공화국의 마지막 인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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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평론집, <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마치 어제 시인이 된 것처럼, 망해 버린 공화국의 마지막 인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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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이 도저한 질문 앞에 그 누군들 망연해지지 않겠는가. 이때 시인이란 그저 ‘등단했거나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좀 더 좁혀 ‘시를 쓰고 있는 중인 상태’ 정도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라니, 이 얼마나 부질없는 동어반복인가.

신동옥 시인이 호명하는 시인은 겨우 그런 것이 아니다. 책에서 옮겨 적자면 시인은 “망해 버린 공화국의 마지막 인민”이자, “불행한 열정과 희망 없는 사랑을 모두 경험한 다음”을 사는 자이며, 그래서 이미 “죽었고, 죽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자다. 김수영, 신동문, 이성복, 이승훈, 김정환, 기형도, 박정대 그리고 김현이, 에메 세제르, 옥타비오 파스, 마흐무드 다르위쉬, 또한 커트 코베인, 앤드류 우드, 에디 베더가 예컨대 그들이다.


그들은 누구나 최후이자 최초다. 그들은 시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감행했고 마침내는 시를 종결지었으며, 바로 그렇기에 영원한 실패를 자초했고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시인은 태어난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시 끊임없이 소생해야 한다. 성실하게 삶의 몫에 부닥쳐야 한다. 삶의 힘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끝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시인이 “지구라는 우주의 오아시스에 최후까지 남을 꽃”이라는 거대한 희망은 이런 문맥에서 발원한다.


자, 여기 진짜 시인들이 있다. 매순간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자들이 있다. 책을 펼쳐 보라. 그들은 행간마다 불쑥 튀어나와 당신에게 묻을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우리가 누구이고, 또 시를 통해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왜 털어놓고 서로에게 말을 하면 안 되는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왜 직접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가?” 이 질문들이 진정 곤혹스럽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저자 신동옥 시인은 1977년 고흥 남양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시와 반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문학일기 <서정적 게으름>을 썼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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