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발코니] 열여섯 살 재일 한국인 소녀가 쓴 1945년 그날의 이야기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청년의 아픈 이야기 담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극단301의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은 일본군에 끌려가 자살특공대원이 된 조선 청년들의 이야기다.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탁경현, 최정근, 김상필, 민영훈이 등장한다.


1945년 일본 가고시마현 치란. 조선인 김유자가 딸 마리와 함께 식당에서 일한다. 식당 주인박성웅이 모녀를 거두어줬다. 그의 성격은 거칠다. 박성웅을 형님으로 모시는 서준길이 음식 재료들을 배달한다. 그는 김유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 김상열은 일본군에 입대한 뒤 소식이 끊긴 동생 김상필을 찾으러 일본에 갔다가 식당에 들른다.

마리는 열여섯 살, 소설가가 꿈이다. 소녀는 일기에 조선인 특공대원 네 명의 이야기를 쓴다. 소명 때문이다. 특공대원 중 맏형인 최정근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비밀을 마리에게 알려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겨달라며 펜을 건넨다.


탁경훈은 일본군의 협박에 못 이겨 입대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입대한 덕에 생선 가게를 꾸려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한다. 최정근은 특공대원 네 명 중 계급이 가장 높다. 중위다. 그는 사랑하는 일본 여인 우메자와에게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주소를 적지 않는다. 찾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특공대원 동생들을 살리고 자신만 출격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김상필의 아버지는 대한제국 군인이었고, 큰 형은 3.1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실종됐다. 김상열은 동생을 만나 "아버지와 큰 형을 생각해서라도 네가 어떻게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군에 자원입대를 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김상필은 자신이 희생하면 가족들이 편해질 것이라고 대답한다.

김상필은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을 이기는데 도움을 주면 조선이 자치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민영훈은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일본인에게 조선인의 배포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광복을 맞는다. 그러나 특공대가 전범으로 몰리면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의 한 장면  [사진= 아트리버 제공]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의 한 장면 [사진= 아트리버 제공]

AD
원본보기 아이콘

조선인 특공대원에게는 이름이 없다. 부대 내에서는 조선인임을 숨기고 미쓰야마 후미히로(탁경현), 다카야마 노보루(최정근), 유키 쇼히츠(김상필), 이와모토 타츠오(민영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들에게는 삶도 없다. 그들은 폭탄을 가득 실은 '제로 원'을 타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라는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인 특공대원들에게 식당은 형, 동생,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곳,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특공대들은 출격 전야에 식당을 찾아가 가슴에 담아둔 마지막 한을 토해낸다. 나머지 인물들은 연극의 무게감을 덜어준다. 엄혹한 일제강점기, 같은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도 내일을 기약하며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던 조선인들의 평범한 삶도 있었던 것이다.


김유자는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밝다. 그는 민영훈이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 음악이 흘러나오자 그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늦은 밤에 일기를 쓰는 마리를 놀래키기도 한다. 서준길은 김유자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하지만 행동이 어설퍼 관객의 웃음을 산다. 이들이 만드는 웃음은 극의 균형을 잡아준다.


가미카제 아리랑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조선인 특공대원 네 명 중 민영훈을 제외한 세 명은 실제 인물이다. 최정근과 우메자와의 사랑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로 확인됐다. 태평양 전쟁 말기 가고시마현 치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로 알려진 일본 육군의 특공기지가 있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