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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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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항한 양심(안인희 옮김ㆍ자작나무)'이란 책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종교개혁가 장 칼뱅에 맞섰던 인문주의자 제바스티안 카스텔리오에 관해 쓴 평전이다.


평전이긴 하지만 제네바를 배경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의 풍경, 신학적 다툼, 양심의 문제에 무게가 실렸다. 한데 이 책에는 상식과는 좀 다른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칼뱅이 정의와 진리를 독점했던 제네바 풍경이 그렇다.

책에 따르면 칼뱅이 만든 '종교국'이 제네바 시민의 모든 사생활을 감독했단다. 도덕경찰관이 여자들의 옷이 너무 길거나 짧지 않은지, 손가락에 반지를 몇 개나 꼈는지, 검인이 붙지 않은 책이 있는지, 가톨릭의 성화나 묵주를 감추고 있지 않은지 등을 감시하고 처벌했다. 그 결과 밀고와 처형이 넘치면서 "칼뱅이 통치한 처음 5년 동안 비교적 작은 이 도시에서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35명이 화형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 제네바를 하나님에게 봉헌하기 위해서였지만 적어도 당시의 제네바는 '천국'이 아니었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세르베토의 화형 사건이었다. 에스파니아 출신의 세르베토는 칼뱅의 교리에 이견(異見)을 냈다가 산 채로 불태워졌다. 볼테르에 따르면 개신교에서 일어난 최초의 '종교적 살인'이었다. 이를 두고 한때 카스텔리오는 '이단자에 관하여' 등을 통해 칼뱅과의 싸움에 나섰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고 질타하면서.


이후 카스텔리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해졌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글은 인쇄조차 될 수 없었고, 그 자신이 한때 화형에 처해질 뻔하기도 했다. 결국 역사에서 잊힌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을 길게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개신교의 교리나 종교개혁의 어두운 면 또는 칼뱅의 실상을 두고 다투려는 게 아니다. 카스텔리오의 삶을 통해 역사의 이면, 진리와 정의의 다양한 얼굴 그리고 이른바 '정의'가 '힘'과 손잡을 때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지적하고 싶어서다.


칼뱅 자신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고 정직한 인물이었다. 처음 목사로 일하면서 곧바로 사생아를 낳은 츠빙글리나 "마누라가 싫으면 하녀가 있지"라고 한 루터와 달리 칼뱅은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다. 자신의 기쁨을 위한 행위는 철저히 배격하면서 오로지 생각하고, 글 쓰고, 일하고 싸웠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카스텔리오의 주장을 두고 그의 젊은 후계자 드 베즈는 이렇게 말했단다. "양심의 자유는 악마의 학설"이라고.


오직 자기들만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다는 자부심은 불편하다. 이것이 권위든 대중의 여론이든 '힘'을 동반할 경우엔 위태롭기까지 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을 한 성창호 판사를 겨냥한 인신공격을 보면서 츠바이크의 책이 떠오른 까닭이다. 법정 구속까지 시킨 것은 다분히 감정적 처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나 이른바 '민변'이 탄핵소추 대상을 들먹인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편은 늘 옳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라는 내심이 엿보여서다. 성 판사의 이전 판결에 대해선 그토록 박수를 보내다가 이제 와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 출신이라는 둥 전력을 꺼내드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21세기 한국에는 이견을 용납할 여유도, 항소심 같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바로잡을 이성도 없는가. 김 지사의 구속으로 경남도가, 국가가 당장 휘청이는 것도 아닌데. 무엇보다 이른바 '민심'이란 위력과 손잡은 '정의 세력'에 맞설 '카스텔리오'는 없는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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