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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시지가 현실화, '이념' 아닌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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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의 일환으로 1989년 도입된 공시지가제도가 최근 커다란 변곡점에 서 있다. 그간 공시지가제도는 지가 안정과 초고속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된 공익 사업의 효율적 시행이라는 정책 성과를 거둔 반면 30년간 과도하게 낮은 공시가격 반복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부동산가격공시법에 따라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적정 가격'을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정 가격은 '당해 토지 및 주택에 대해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 즉 시가를 말한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시지가를 적정 가격으로 공시하는 것은 법적인 의무다.

그러나 2012년 국토부가 2006년 이후 축적된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해 유일하게 공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도 실거래가 반영률은 전국 평균 58.72%에 불과했다. 편차는 49.82%(강원도)에서 73.61%(광주광역시)로 지역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까지도 큰 차이 없이 이어졌다. 낮은 공시지가는 부동산 거래의 지표 기능 약화와 조세 및 복지 비용 부담의 형평성 훼손, 국책 사업 보상 갈등 유발 등을 초래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공시지가의 낮은 시세반영률 등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렇게 낮은 공시지가 정책은 특정 정부의 과오가 아니라 노태우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간 어느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난제다. 최근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에 대한 정책 의지는 만시지탄이지만 사필귀정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공시지가 현실화가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헌법 이념에 부합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진보나 보수를 가르는 '이념'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다만 공시지가 현실화가 재산세 및 건강보험료 부담 가중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부동산가격공시법 등에 마련된 '공시지가의 가감조정제도'를 통해 공시지가를 활용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이 필요한 경우 합리적으로 조정해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평균 건강보험료가 급격히 상승하는 문제나, 10만명의 노인이 기초연금 수급자에서 탈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은 관련 기관에서 공시지가를 조정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국토부가 공시지가를 활용하는 관련 부처와 특별전담반(TF)을 구성해 공시지가 현실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발표는 타당한 정책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공시지가 현실화 논쟁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 공시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지가 관리 정책은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를 요하는 사무에 해당해 국가가 맡는 것이 더 적합하다. 또 부동산 가격 공시 업무의 전문성 측면에서 국토부는 산하 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부대 업무를 위탁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으나 지자체에는 전문 인력이 사실상 전무하다. 향후 지자체도 감정평가사 등 전문 인력을 공무원으로 채용해 부동산 가격 공시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병행한 이후 분권에 관해 논의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공시지가 현실화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책 당국은 그간 투기 세력이 조장한 아파트 호가 등 비현실적 정보로 소비자를 우롱해온 부동산시장이 건전하게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허강무 전북대 공공인재학부 교수ㆍ한국부동산정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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