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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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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녔던 신문사 경제부에 K라는 기자가 있었다. 사람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기자로선 무능했다. 그가 평기자일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차장이 되어 후배 기자들의 글을 고치게 되면서 폐해가 드러났다. 워낙 개악을 하는 바람에 부장이 그가 손댄 글을 후배의 원 기사와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차장이란 입장을 고려해 부장이 그를 공개적으로 나무라진 않다 보니 조직은 삐걱거렸다. 그가 친 저지레를 수습하느라 품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K 차장을 두고 "더 열심히 일하면 큰일 낼 사람" "차라리 사우나에서 한나절 보내는 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 쑥덕일 정도였다.

10년도 전의 일을 떠올린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겹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8일 국무위원과의 송년 만찬에서 "역대 어느 정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을 접하고 실소를 지은 이가 많았을 것이다. 최근의 문 대통령 지지도 조사를 보면 적어도 절반은 그랬을 성싶다. 세상사는, 성실성이나 성의만으로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정 운영이라면 특히 그렇다. 과정이나 의도보다는 결과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문 대통령의 이 발언에 토를 달 근거가 잇달아 나왔다.

같은 달 30일 국가미래연구원은 2018년 3분기 '민생지수'가 91.33으로 2분기에 비해 1.27포인트 하락했으며 4분기 연속 하락세라고 발표했다. '민생지수'는 고용구조와 질 등 5개 항목을 긍정 요소로, 교육비와 실질 전세가격 등 6개 항목을 부정 요소로 구성해 가중치를 줘서 산출하는 지표로 국민의 단기적 체감 살림살이를 가늠하는 데 쓰인다. 한데 문재인 정부의 평균 민생지수가 노무현 대통령 때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낮단다. 이 지경이면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열심히'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사실은 또 있다. 민간인 사찰 논란을 일으킨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행태를 두고서다. 그는 16개월 동안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하면서 다수의 민간 관련 '첩보'를 보고했다고 했다. 이는 같은 달 3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수차례 경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한 데서 보듯 보고 자체는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사찰'과 '동향 보고'가 뭐가 다른지, 왜 누구는 '공익제보자'로 의인 대접을 받고 누구는 '미꾸라지'로 고발되는지는 제쳐두자. 또 공무원이 '수차례 경고'와 '적절한 조치'를 무릅쓰고 같은 성격의 보고를 거듭하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지도 넘어가자.
그렇다 해도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은 '열심히' 한 것 아닌가. "과거 정부의 습성을 못 버렸는지는" 몰라도, 상부의 지시를 받고 민간인 또는 민간기업의 '동향 보고'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아도 그는 나름대로 열성껏 활동한 것 아닌가. 청와대 측의 소명대로라면 경고와 묵살을 감수하고도 비슷한 보고를 양산했으니 말이다.

'바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찰스 만즈 외 지음ㆍ한언)'란 책이 있다. 셀프 리더십에 관한 책이어서 기대만큼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번역판의 제목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난다. 요컨대 '최선' '열심히'만으로 자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충분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국정 운영은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잘' 하는 것이 절실하다.

가끔 가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근처의 한 음식점 사장이 그랬다. 그 골목에 여남은 개의 음식점이 있는데 지난해 40명의 종업원을 줄였다고 했다. '열심히' 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굳이 '열심히' 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지나친가.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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