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고문에도 옥중 만세운동.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국가보훈처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를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나온 만세 시위대가 학교 앞을 지나자 유관순 열사는 5명의 시위 결사대 동지들과 함께 시위운동에 동참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유관순 열사는 3월13일 사촌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귀향해 본격적으로 고향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시위 대열이 아우내 장터 곳곳을 누비자 병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달려와 총검을 휘두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이 "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했고, 이를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 들다가 유관순 열사의 모친마저도 일본 헌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의 시신을 둘러메고 병천 헌병주재소로 쇄도해 항의 시위를 하다가 체포돼 천안헌병대로 압송됐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쳤다. 1920년 3월1일에는 수감 중인 동지들과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중상을 입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해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28일 오전 8시,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유관순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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