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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잠자는 교실,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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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작 후 10분만 지나면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1~2명, 중학교 교실에서는 3~4명,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4~5명 이상의 학생이 졸거나 잔다. 또 고교에서조차 어린아이처럼 수업 시간 중에 돌아다니고 떠드는 학생들로 교사들이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교사가 이 아이들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학생을 깨우거나 지도하다가 폭언을 듣기 일쑤인 데다, 어깨를 두드리거나 팔만 잡아도 성희롱ㆍ폭력ㆍ아동학대로 고발당하는 경우가 빈발해서다.

최근 경기도 A고교의 교사는 수업 중 애정 행각을 벌이는 남녀 학생에게 주의를 주려 어깨를 툭 쳤다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또 서울 B초교 교사는 돌아다니며 수업을 방해하는 남학생의 어깨를 잡았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시도교원치유지원센터나 교원단체에서 접수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를 보면 이 정도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최근에는 스쿨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교육 현장에서 '펜스 룰'마저 확산되는 분위기여서 우려스럽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 9월 교직원 681명에게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흔들어 깨우는 것도 성적 괴롭힘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은 결과, 30%가 '그렇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이런 의식을 반영하듯 지난가을 학교 운동회에서 교사ㆍ학생 2인3각 달리기 종목이 사라지고, 교내 연수에서는 '아이들을 터치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단골 소재였다고 하니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이는 사제지정과 사제동행의 교감(交感)이 끊어져버린 교실 현장의 민낯을 보여준다. 교사들은 전인교육은커녕 수업만 하는 존재가 됐다며 자괴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당한 학생 생활지도권이 무너지고, 지도 과정에서 조금만 손을 대도 범죄가 되는 교실에서 교사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보급한 '2017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은 학생과의 언쟁 지양, 주의 후 수업 진행, 상담 등 안내에 그쳐 즉각적인 대처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원성을 샀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전면 체벌 금지, 상벌점제 폐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교사들은 손발이 묶인 지 오래다. 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학교민주화, 학생회 법제화에 열을 올리며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외국은 교육법ㆍ학교법 등을 통해 교사의 수업권ㆍ훈육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작년에 발간한 '각국의 수업 방해 학생에 대한 수업권 보호 정책'에 따르면 미국ㆍ독일ㆍ영국ㆍ중국 등은 교사에게 학생에 대한 교실 퇴장, 물품 검사 및 압수, 물리력 행사 허용 등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교사의 수업권을 강화하고 여타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생활지도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 현장의 펜스 룰 확산과 관련해 '교육상 신체 접촉 허용 기준' 매뉴얼도 조속히 제작ㆍ보급해야 한다. 다양한 학생 지도 과정에서는 교육적으로 적절한 신체 접촉이 필요하거나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교사와 학생이 접촉을 꺼리고 차단하려는 현실은 걱정스럽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교사의 신체적 접촉이 오해를 사거나 왜곡돼 자칫 교권 침해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교사가 학생 교육과 지도에서 손을 놓게 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배움이 일어나는 신명 나는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맞추고 공감과 온기를 나누는 공간에서 가능하다. 교육부는 조속히 학생 생활지도 매뉴얼과 교육상 신체 접촉 기준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잠자는 교실, 붕괴한 교실의 경고음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ㆍ부산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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