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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관료는 슈퍼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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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료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스스로 '슈퍼맨'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분명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의 예가 살충제 계란 사태에 이어 케이크 식중독 사건으로 표면에 떠오른 식품 안전 문제다. 식품 제조 업체에서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한 케이크가 오염돼 2000명 이상의 학생이 식중독에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가 신속한 대응으로 사태가 더 확산하는 것을 막은 것은 잘한 일이다.

문제는 사건 이후에 나온 대책이다. 첫째, 케이크 제조 업체 496개 전체에 대해 긴급위생검사를 실시한다. 둘째, 학교 급식소 시설 개선 및 급식 관계자 예방교육을 강화한다. 셋째, 식품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ㆍ해썹) 인증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 구성 및 불시평가 등 축산물 인증제도를 강화한다. 언뜻 보면 매우 잘 짜인 대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 식품 안전사고나 산업재해 등 각종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비교해보면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틀에 박힌 대책일 뿐이다. 사건이 일어날 때 근원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나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다 보니, 한국은 결코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지난 7일 발생한 고양 휘발유저장소 폭발 같은 산업재해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식품 사고의 근원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국가가 모든 식품 회사의 식품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슈퍼맨 정신을 버리는 데 그 출발점이 있다. 식품의 안전은 제조업자의 책임이다. 제조업자는 정부가 정해준 규칙, 즉 HACCP에 따라 안전한 식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할 의무를 지니며, 정부는 제조업자의 가능한 일탈을 매의 눈으로 엄격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국가가 '이 회사 제품은 안전합니다'라고 인증해준다. HACCP 인증 업체 수는 1만1423개다. 이를 관리하는 식품안전인증관리원 인원은 불과 227명이다. 이 인원으로 1만개가 넘는 인증 업체가 식품을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증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안전 인증이 필요한 전기 제품과 달리 식품의 원자재는 생물이다. HACCP의 관리 기준이 제품마다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인증 기간에 최종 제품의 안전까지 보증할 수 있는 산업이 결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인증 업체에 대한 현장조사 때도 일정을 미리 통보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미국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자. 미국에서도 HACCP이 식품 회사가 도입해야 할 안전관리 체계임은 틀림없지만 정부가 인증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식품 제조 회사들은 미국 농무부와 식품의약국(FDA)이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자체적으로 HACCP 프로그램을 도입해 식품을 제조한다. 미국 정부가 하는 일은 식품 회사에 부정기적인 불시 검사를 실시해 일탈 기업을 잡아내고 위반 정도에 따라 공장 폐쇄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이다. 미국 FDA 지부는 1년 365일 식품 제조 회사를 불시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이는 것을 전담으로 하는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사무실에도 가지 않는다. 오로지 현장에만 간다. 그리고 크고 작은 위반 사항을 발견해내면 책임자를 불러 "너희가 무엇을 위반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즉각 고치고 어떤 것은 6개월 시간을 줄 테니 바꿔라"라고 말한다. 적발 위주의 현장조사가 아니고 계도 위주의 행정이다. 물론 사안이 중대하면 즉각적인 공장 폐쇄를 명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어떤 시스템이 국민의 식품 안전을 더 확보할 수 있는지. 식약처는 '인증 장사'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227명의 인력을 지역에 배치해 365일 현장 방문에 투입해야 한다. 식약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내 모든 부처의 모든 인증을 재검토해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폐지해야 한다. 관료는 슈퍼맨이 아니다. 할 수 없는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 선진 행정의 첫걸음이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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