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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청춘에게 한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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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손은 상대방과 공동소유입니다.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면 수백 명 이웃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셈입니다. 손은 자기 것이면서 다른 사람 것입니다. 마주 앉은 이의 유리잔에 물을 따를 때, 연인의 옷매무새를 고쳐줄 때 '내 손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됩니다.

옷이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집을 나서면, 의상은 '공공의 것'이 됩니다. 개인의 옷차림이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고, 누군가의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과 장례식에 가기 위해 옷장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특정장소가 요구하는 의상의 조건을 생각합니다. 이른바 '드레스코드'입니다.
때와 장소를 고려한 옷차림은 모두를 편안하게 합니다. 한복을 입고 휴일의 고궁을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문화의 가치를 묻는 사람들에게 따스하고 긍정적인 답을 제공합니다. 새로운 관습이 새로운 전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한복을 입으면 무료입장과 음식점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깎아내리진 맙시다. 누가 뭐래도 반가운 일이니까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기운에 끌린 젊은이들일 것입니다. 생소하지만 몸에 와 감기는 기분이 왠지 싫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간을 스스로 체험해보려는 젊은이들이. 사극(史劇)에서나 보던 옷들을 직접 입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보려는 그들이. 자신들이 주인인 유물과 유산에서, 젊음과 미래의 코드를 찾아보려는 그들이. 한복에서 자기 정체성의 구체적 증거를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들이.
이런 생각 끝에, 고궁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서, 청년들과 한복이 더욱 친해지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이슈가 된 뉴스('전통한복이 아니면 고궁무료입장을 불허하겠다.')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지요.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단호했습니다.

"직접 보시면, 그런 말씀 못하실 것입니다. 저희도 선생님처럼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러나 '이건 좀 심하다' 싶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도대체, 한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서양식 레이스, 현란한 금박…. 소재도, 문양도 국적불명입니다. 전통을 지키기는커녕, 다 망가뜨리게 생겼습니다."

순간, 안타까운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아! 청년들이 또 야단을 맞게 생겼구나.' 그러나, 곧바로 반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뭘 잘못했지? 그들이 한복을 망쳐놓았나?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을, 그들은 입은 죄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한복의 개념이나 예법을 누가 가르쳐주기나 했나?"

저는 소망합니다. 더 많은 청춘들이 한복을 입고, 궁궐과 왕릉과 서원 그리고 올해 세계문화유산이 된 옛 절들을 활보하기를.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셀카'를 찍으며 행복해하기를. 귀국길 여행가방 안엔 치마저고리와 두루마기 한 벌씩 들어있기를.
한시바삐, 한복이 지켜야 할 것과 바뀌어도 좋을 것들의 엄정한 기준을 세워야겠습니다. 관청과 학자 그리고 관련업체들이 모여, '조선시대'와 '21세기'의 미덕이 두루 조화로운 우리 옷의 길을 찾아내야겠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모두 법식에 맞아서, 마음대로 골라 입어도 핀잔 들을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덧붙이겠습니다. 아이들부터 가르칩시다. 더 이상 제 나라 옷도 못 입는 청년들을 만들지 맙시다. 한글을 익힐 나이엔 우리 옷과 만나게 해줍시다. 혼자 단추를 채울 줄 알거든, 그 고사리 손으로 옷고름도 맬 수 있게 합시다.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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