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북한 비핵화 문제에 국력이 집중된 사이 신남방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 중국이 일대일로(육상ㆍ해상 실크로드), 미국이 인도ㆍ태평양 전략 수행을 위해 물량과 외교전을 벌이자 한국의 신남방 정책은 길을 잃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2일 일제히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앞두고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 충돌 등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 초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2002년 채택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후속 조치로 분쟁 악화 예방과 관리 등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담은 COC 제정을 추진해왔다. 초안은 향후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 간 COC 협상의 기초 자료로 쓰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도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ㆍ중국 외교장관 회담을 주재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승리의 자신감이었다. 승리의 대상은 미국이다. 중국 언론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미국에 한방 먹였다고 표현했다.
중국은 이번 ARF를 앞두고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미국이 국방수권법을 통해 중국 해군의 환태평양합동훈련(RIMPACㆍ림팩) 참가를 원천적으로 제외하자 아세안 국가들과의 훈련을 제안했다. 왕 부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에 앞서 마하티르 빈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났다. 말레이시아가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국가임에도 마하티르 총리가 중국에 날 선 비판을 거듭하자 이를 무마하려는 대응이다.
미국도 역전을 노린다. 폼페이오 장관은 싱가포르로 출발하기 전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대한 1억1300만달러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싱가포르 외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돌며 중국에 맞서는 아세안의 역할을 주문할 예정이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문 목적이 일대일로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COC 초안 합의로 미국은 일격을 맞았다. 중국의 대(對)아세안 투자액의 0.01%에 불과한 투자로는 역내의 이권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이처럼 미ㆍ중 양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지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ARF에서 아세안 회원국을 상대로 신남방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세안 각국은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
이게 우리 외교의 현실이다. 중국의 입김이 강해지면 역내에서의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에서 한국이 중국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진다.
동남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와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엄청난 호기를 맞았지만 한국의 동남아시아 대응은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일대일로, 인도ㆍ태평양 전략 대신 우리 독자 외교의 방향을 제시했지만 길을 잃었다.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할지 냉철한 외교적 판단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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