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오전 8시15분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92세로 별세했다. 2009년 김대중(DJ), 2015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은 김 전 총리의 타계로 현대정치사를 쥐락펴락했던 '3김씨'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완고한 지역주의와 1인 보스의 리더십에 의존한 '3김 정치'도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바뀜에 따라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정치의 중심은 3김이었다. DJ는 호남, YS는 부산ㆍ경남(PK), JP는 충청을 기반으로 협력과 갈등을 반복했다. 이들이 힘을 합치고 갈라설 때마다 정치는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이 같은 지역 구도는 지난 1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처음으로 PK 지역을 석권함으로써 깨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무려 28년 만이다. 정치권에는 여전히 계파 정치가 잔존하지만 정치자금 투명화와 경선제 도입 등으로 1인 보스가 당권을 쥐고 흔드는 구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3김이 퇴장한 자리도 새로운 시대 정신이 채운 상태다.
김 전 총리는 사망 당시 신당동 자택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공주중, 대전사범,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하고 임관했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소장의 5ㆍ16 쿠데타에 참여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정권의 2인자로서 산업화 시대 권력의 틀을 짰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올랐고, 45세에는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이후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인은 2004년 총선 패배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200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상을 지켜왔다.
고인은 화려한 이력만큼 수많은 어록도 남겼다. 1980년의 '서울의 봄'을 두고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표현했다. 신군부의 등장을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2011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내각제 개헌 유보 움직임을 보이자 '몽니'라는 단어로 일축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의 성정처럼 직설적인 발언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김 전 총리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정권 교체를 이룬 큰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독재 정권을 옹호했고, 지역주의와 계파주의를 심화시켜 정당 정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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