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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간첩 색출용→범죄 악용'…주민등록번호,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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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변경 사례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기사 내용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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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의 수혜자가 476명에 달한다. 요즘도 한 달에 45~6명이 피해를 호소하며 변경 신청을 한다. 13자리 숫자로 이뤄진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는 미국의 사회보장번호 등 타국에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소중한 개인 정보다. 실생활, 각종 문서·행정, 인터넷 등에서 본인 인증, 실명 확인, 성인 인증, 중복 가입 여부 확인 등을 위해 사용된다. 1968년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를 습격한 무장 간첩 사건 발생 후 간첩 색출을 위해 만들어졌다.

민주화·인터넷 시대 개막과 더불어 개인 정보·인권 침해, 유출시 심각한 피해 우려 등이 제기되면서 폐지 등 제도 개편 논의가 있지만 그냥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 개인 정보 유출 등으로 사실상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중국 해커 손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유출 피해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 시행 1주년을 맞아 발표한 476명의 변경 사례를 살펴 보면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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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등 사기에 당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 A씨는 2015년 2월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전화 사기범에 당해 1억1030만원이나 송금하고 말았다. A씨가 이 사기범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주민등록번호 때문이었다. 사기범은 어떻게 알았는지 A씨의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주요 개인 정보를 그대로 불러 댔다.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한 기존 보안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 지 알 수 있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검찰수사관을 사칭한 전화사기범에게 당한 B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가짜 법무부 사이트에 접속해 주민등록번호와 인터넷 뱅킹 관련 정보를 입력했고, 범인은 이를 이용해 B씨의 계좌에서 9억원을 인출한 후 중국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매해 사라지고 말았다.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발생하는 피해도 많다. C씨는 아파트를 월세로 빌려줬다가 세입자가 계약서를 통해 알아낸 주민등록번호로 C씨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벌인 사기 행각에 당했다.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제3자와 공모해 허위 전세계약서를 작성한 후 이를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아 도주한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인 D씨는 노임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제공했다가 도용당하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근무하지도 않은 회사 2곳에서 일해 430만원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신고됐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피해사례도 있다. E씨는 얼마전 가상화폐사이트 빗썸의 통장에 들어 있던 1억8000만원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유출된 사실을 확인한 후 경악했다. 알고 보니 누군가 E씨의 아이디,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등을 알아 낸 후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가상화폐사이트 통장에서 돈을 빼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성폭력의 수단이 된 경우까지 있다. F씨는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주민등록번호 등이 포함된 취업계약서를 써줬다가 비용 명목으로 1000만원을 빼앗긴 것은 물론, 함께 출장을 가자 길래 따라 나섰다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2차례나 성추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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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데이트 폭력에도 주민등록번호가 악용된다. G씨는 심각한 가정 폭력과 도박으로 이혼한 전 남편이 주민등록번호로 주거지와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고 문자로 협박하는 등 고통을 당했다. H씨는 신상 정보를 알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20여 일 간 감금당하고 지속적인 협박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H씨의 어머니, 동생, 조카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까지 알아내 협박을 해왔다.

공익신고를 한 제보자 I씨도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피해를 봤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탈세를 신고한 후 회사로부터 문자, 전화 등을 통해 "죽여버리겠다", "업계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실제 회사에선 I씨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다 알고 있어 얼마든지 보복에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민등록번호가 명예훼손에 악용된 경우도 있다. J씨는 해외 유학 중인 자녀들을 불성실하게 보호한 현지보호자(guardian, 가디언)에게 항의하고 환불을 요청했다가 현지보호자가 피해자 가족의 주민등록등본 및 여권사본 사진을 동봉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바람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생명·재산상 피해 또는 피해 우려가 확인된 사람에 한해 신청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봉책'·'땜질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온라인 시대의 개인 재산·인권 보호의 토대인 소중한 개인 정보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의존하다 언젠가 한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큰 코를 다치고 말 것이라는 경고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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