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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군산/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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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 방직공장으로 난
철길 따라 아비가 떠나갔다
산란기의 조기처럼
머리 굵은 자식들도
모두 철길 따라
바다로 떠나갔다

바다가 육지라면……
철길에 남겨진 어미는
철 지난 노래를 불렀다
기차도 노래도 세월도
오래전 덜컹거리며
집 앞을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바다가 육지가 되었을 때,
어미는 바다에 묻혔다
서해를 건너온 눈발은
고군산열도를 지나
이성당 빵집 유리창에
빵가루처럼 들러붙는다
선창에 들이친 자식들은
면상(面上)을 향해 날아들던
아비의 폭투를 떠올린다
사막의 낙타가 엉겅퀴를 씹듯
입안에 흐르는 피와 소주를
섞어 가며 꽃게를 씹는다

여전히 9회말 투 아웃,
닫힌 공장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인다
여전히 빠져나갈 길이라곤
바다 쪽으로 난 길밖에 없다

[오후 한 詩] 군산/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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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만으로도 슬픈 곳이 있다. 군산이 그렇다. 그러나 특히 개항 이래 군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맨 앞의 문장은 분명 불편했을 것이다. 만경강을 껴안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들이 모여들던 군산은 그래서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엔 수탈의 창구였으며, 그 기구함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군산은 한마디로 슬픔의 집산지다. "바다가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빠져나갈 길이라곤" "바다 쪽으로 난 길밖에 없다"는 차라리 문장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싶을 만큼 너무 탁월해 다만 슬플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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