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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소방관 교통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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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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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중략)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스모키 린) 중에서

지난달 30일 오전 충남 아산에서 여성 소방관 3명이 도로 위의 개를 구조하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신혼의 단 꿈에 빠져 있던 김모(30) 소방교, 2주 후 정식 임용 예정이었던 문모(23·여)·김모(29·여) 예비 소방관 등 희생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온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처럼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ㆍ인명 구조 등 본업이 아닌 단순 민원에 출동했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2015년 9월 이모 소방관은 벌집을 제거하다 독성이 일반 말벌보다 2~30배 강한 등검은말벌에 쏘여 숨졌다. 2011년 1월22일 광주 광산구에선 소방관 2명이 아파트 고드름 제거 민원을 받고 출동했다가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
이로 인한 본연의 업무에 지장도 크다. 지난해 12월22일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119구조대 중 일부가 고드름 제거에 나섰다가 화재 현장에 6분 가량 늦게 도착해 골든타임을 놓쳐 대형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에도 지난 1월30일 오후11시14분께 한 소방서 119대원들이 수도 동파 민원을 처리하다가 화재 현장에 제때 출동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18일에는 비둘기 사체를 처리해주다가 아파트 화재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이같은 일이 지속되자 소방당국도 2011년 9월 관련 법을 개정해 '단순 생활 민원'에 대해선 출동을 거절할 수 있도록 했었다. 시민들의 생명ㆍ재산에 피해가 예상되는 심각한 상황에만 119 구조대를 출동시키겠다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같은 규칙은 그동안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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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상황별, 지역적 특성에 따르면 구체적인 기준과 매뉴얼이 없었다. 문 개방 민원의 경우 일반인이 열쇠를 잃어버린 후 열쇠공을 부르기 싫어 119에 신고하는 경우라면 거절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집안에 장애인ㆍ어린이ㆍ노약자ㆍ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혼자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열쇠를 분실한 보호자가 119에 전화해 문을 따 달라고 요청하면 거절하기가 힘들다. 다른 상황도 마찬가지다. 고드름의 크기나 추락시 위험성, 벌집의 위치 및 벌 개체수ㆍ종류, 동물의 개체 수ㆍ종류ㆍ처한 상황 등에 따라 위험도가 천차만별이다. 상황을 눈으로 보지 않고 있는 119구조대의 입장에선 신고자의 출동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지휘관들이 '민원' 발생과 만약의 가능성을 우려해 무조건 출동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접수자 입장에선 비긴급으로 판단해 출동을 거절했다가 만에 하나 정말 응급 상황이어서 생명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최악엔 지휘관 및 일선 대원들까지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민원인들이 항의를 하거나 심지어 고발을 할 경우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

시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119구조대의 서비스를 '개인용'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 전국 119구 구조대의 출동 건수 80만5194건 중 생활안전출동건수는 42만3055건(52.5%)에 달한다. 이중 벌집제거 15만8588건(37.4%), 동물포획 12만5423건(29.8%), 잠금장치개방 7만194건(16.5%) 등 소방관이 굳이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동물 포획 출동 12만5423건 중 고양이, 조류, 고라니 등과 같이 사람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출동도 5만961건(40.6%)에 달했다. 한 소방대원은 "집안에 아기가 혼자 있다고 해서 출동했더니 술에 취해 열쇠를 찾지 못한 취객이었다"며 "화재 진압ㆍ인명 구조나 응급 환자 이송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와달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소방당국도 이를 해소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지난달 28일 전국 시ㆍ도 소방본부 실무 회의를 개최해 '비긴급 생활안전 신고 거절 세부 기준'을 논의했다. 그동안 유명무실 했던 기준을 상황별ㆍ유형별ㆍ출동 부서 별로 세분화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미 경기도는 지난달 초부터 독자적인 가이드 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 단순 민원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출동 거절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9일부터 27일까지 1171건의 단순 민원에 대한 출동을 거절했다. 김인겸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재난대응구조팀장은 "신고를 받을 때 민원인에게 긴급 여부를 확인한 후 아니라고 할 경우 거절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부작용은 별로 없고 출동 거절에 대해서도 민원인들이 대부분 잘 이해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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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소방관들은 기대를 표시하면서도 또 다시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높다. 류충 전 천안동남소방서장은 "가장 큰 관건은 민원이 발생할 경우 소방대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출동 거절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며 "제대로 된 출동 거절 세부 기준과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고, 신고 접수시 경험있는 접수자가 신고자의 목소리나 상황을 파악해 긴급성 여부에 대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 전 서장은 이어 "시도 본부장들이 민원을 우려해 머뭇거리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며 "소신을 갖고 책임을 져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위기 대응 조직을 지휘하는 사람이라면 소신대로 밀어 부치고 잘못됐을 때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갖는 게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단순한 생활 문제는 본인들이 처리하겠다는 시민 의식 개선도 시급하다"며 "이번 사고와 기준 마련을 계기로 시민들의 생각도 바뀌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소방청의 출동 거절 세부 기준이 좀더 일찍 마련됐으면 이번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2016년 한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직업으로 '소방관'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평상시에는 '허드렛 일꾼' 취급하는 한국인들의 이중성도 '적폐'다. 2일 영결식이 열리는 3명의 소방관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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