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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잡초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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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핀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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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으니 / 그댄 자신을 꽃으로 보시게'

얼마 전 지인이 휴대폰으로 보내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팍팍한 삶에 지친 마음의 한편을 보듬어 주는 주옥같은 글귀였다.
대표, 팀장, 교수, 원장 등으로 불리는 직함의 무게는 늘 무겁다. 그 무게에 항상 어깨는 짓눌린 채 모든 고뇌를 짊어진다. 직함을 동반한 삶은 잠시 쉬어갈 간이역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음의 거울을 통해 비춰진 내 모습은 때로는 잡초일 수 있고, 아니면 꽃일 수도 있다. 오로지 내 마음에 달린 일이다. 내 삶을 구속하는 직함을 던져버리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나를 돌아볼 때 가능하다.

한 평생을 야생식물 전문가로 살아 온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잡초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그는 사람도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합한 자리가 아닌데 다리를 뻗고 뭉개고 있으면 그 사람은 잡초가 된다는 것이다.

지인이 보내준 글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출처라고 적혔다. 지방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지침서에 이처럼 감동적인 글이 담겼나 싶어 의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외의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지인이 보내준 글의 출처는 목민심서가 아니었다. 시인 이채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는 제목의 시였다.

원문은 이렇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약간 황당한 마음에 실소가 나왔다. 멀쩡한 시인의 시가 왜 목민심서로 둔갑한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산의 목민심서가 아니라 시인의 시라고 해서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몰랐던 시인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기쁨을 누렸으니 고마운 일이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론의 반응은 아직까지 싸늘하다. 되레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결정적인 진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의 문 앞에 선 이 전 대통령이 잡초로 뽑힐지 화사한 꽃으로 피어날지 여부는 검찰이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몫이다. 진실의 문을 여는 열쇠는 이 전 대통령 본인의 마음속에 항상 놓여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스스로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과연 어떤 모습이 보일까.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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