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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전쟁 필수품이었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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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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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는 나라를 위해서 싸운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살인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파괴, 방화, 절도, 강간 등 온갖 범죄가 저질러진다.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곳으로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는 견디기 매우 힘들다. 때문에 술의 힘이 필요하다.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군인들의 두려움을 쫓아주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독한 증류주가 나오기 전, 유럽에서는 군인들에게 맥주보다 알코올 농도가 높은 와인을 제공했다. 와인은 주식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었으며 오염되기 십상이었던 전쟁터의 식수를 소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로마시대부터 군인들은 전투식량으로 일정량의 와인을 지급받아, 외지에서는 물과 함께 섞어 마셨다.

고대 로마와 프랑스는 전쟁에서 와인이 필수품이었다. 맥주를 주로 마시는 잉글랜드와 그의 앙숙 스코틀랜드 군대도 전쟁터에서는 와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군은 전쟁 때 많은 와인을 확보해야 했다.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할 때도 배에 와인을 가득 싣고 영국 해협을 건너갔다. 와인이 잘 나오지 않는 노르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의 군대에서까지 와인 확보에 열을 올릴 정도였으니, 프랑스를 비롯한 와인 생산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루이 14세 때 기록을 보면, 장교들에게는 하루 1.25ℓ, 일반 사병에게는 그 절반의 와인을 지급했다고 나와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와인도 알코올이 들어있는 술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프랑스 랑그도크 지방의 양조업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도 군 병원에 많은 와인을 기증했다. 독일은 군인들의 음주가 사격에 영향이 있는지 실험해 별 영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프랑스군은 프랑스답게 와인과 맥주를 마신 병사를 비교, 와인이 전투력을 더 향상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 기간에 프랑스 병사들은 0.5ℓ의 와인을 무상으로 지급받을 수 있었고, 추가로 0.25ℓ를 싼 값에 사먹을 수 있었다. 전후 프랑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와인 때문이라는 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전쟁의 필수품이었던 와인.

전쟁의 필수품이었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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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이탈리아에서 철수하던 독일군과 와인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옛날 영화 '산타 빅토리아의 비밀(The Secret of Santa Vittoria)'을 보면, 독일군의 와인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이탈리아가 이 정도였으니 프랑스는 어땠는지 짐작가고도 남는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에게 프랑스는 맛있는 와인과 음식, 날씬한 여자들까지 환상의 나라가 아닐 수 없었다. 이들 중에는 전문 와인감식가와 함께 프랑스의 고급 와인을 찾아내 독일로 보내는 임무를 맡은 부대까지 있을 정도였다.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의 고급 와인을 찾아내어 히틀러 벙커에 나르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의 2인자였던 '괴링'은 혼자서 '라피트(Ch. Lafite Rothschild)'를 따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와인을 좋아했으니, 독일군 고위층이 얼마나 프랑스 고급 와인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에 프랑스 고급 샤토나 일류 레스토랑 주인들은 와인을 뺏기지 않으려고 파묻거나 동굴에 넣고 벽돌을 쌓아 시멘트로 밀봉하는 등 온갖 수단을 사용해 숨겼지만, 상당수의 와인이 독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 프랑스 드골은 특수부대를 편성해 히틀러가 감춰둔 와인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보르도의 1등급 샤토 와인은 물론 로마네 콩티 등 최고급 와인을 무려 50만병이나 찾았다고 한다.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큼 독일과 프랑스의 와인 쟁탈전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와인은 전쟁에 관심 없지만, 전쟁은 와인에 관심이 있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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