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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시대와 不和한 청년들, 책 통해 살아남길 바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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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저자 박숙자

시대를 상징하는 청년 4인 꿈과 좌절 면면이 들여봐
그들의 책 읽기 만큼이 지금 우리의 역사가 되죠


박숙자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박숙자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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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모든 의문은 열 두 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왜 사라졌는지, 또 책과는 무슨 상관이며 '읽기'라는 행위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다분히 옛날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삼중당문고 세대의 독서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최근 출간된 박숙자 교수(47)의 책 이야기다.
책머리에 적힌 네 단어(살아남지 못한 자ㆍ책 읽기ㆍ삼중당문고ㆍ청년)가 단서가 돼주긴 했지만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네 인물 '준ㆍ정우ㆍ혜린ㆍ태일'의 이름이 적힌 목차 앞에서 다시 미로에 갇혔다. 그들의 부재와 우리의 존재. 그 간격만큼이나 역사의 뒤안길에 새겨진 이름들. 저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불러내고는 '존재'에게 묻는다. "들립니까 들립니까 들립니까(227쪽)."

저자 박숙자에 대해 알려진 사실로는 '속물 교양의 탄생(2012년 발간)'의 저자, 경기대학교에서 동서양 명작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문학도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와 네 인물 간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결국 첫 장을 열어 읽기 시작한 뒤에야 베일은 하나둘 벗겨진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채 청년 시기를 보낸 그가 중년의 나이에 돌연 시대와 불화(不和)한 청년 4인의 꿈과 좌절을 면면이 들여다봤다고 한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4인의 부재가 그에게 떠안긴 숙제, 그리고 우리가 들어야 하는 그 '무엇'을.

박 교수는 지난 1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해방 이후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는 살아남지 못한 역사 그 자체였다"면서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 있고, 이 중에 '청년'이 많았다"고 했다. 폐허만 남은 그 시절, 누구나 '제 몫'이 없는 '청년'으로 살아야 했던 점에 그는 주목했다. 그리고 당대 청년들의 독서문화를 해독함으로써 역사의 이면을 파헤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층의 단면을 보고 지형의 변화를 짚어내는 지질학자처럼 그는 '문학'이란 탐침(探針)을 집요하게 활용했다.
박 교수는 "4인은 자기 몫이 없었음에도 국가와 언어, 여성, 노동 등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를 놓고 '무엇'의 의미를 고민했다"면서 "이들이 남긴 문제의식 자체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었다. 우리의 역사는 그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책 읽기는 나와 타인의 삶을 통해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고, 나아가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라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 홀로가 아닌 어떤 보편적 존재에 대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4인은 각 시대를 상징하는 청년 개인이자 1950~1970년대와 오늘날의 청년들, 나아가 제 몫이 없는 모든 연령층을 품고 있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쓴 전혜린, 인간답게 살고자 했으나 끝내 스러진 전태일이 남긴 유산은 그들의 '내일'이었다.

박 교수는 "이들은 다만 살아남기 위해 책을 읽고, 또 책에서 만난 세계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라면서 "'책 읽기'를 매개 삼아 그들이 살아간 세상과 마지막까지 꿈꿨던 '더 나은 삶'의 편린들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했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표지사진.(박숙자 지음, 푸른역사, 1만4900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표지사진.(박숙자 지음, 푸른역사, 1만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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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가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삼중당문고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독서문화사를 구상 중이던 그는 같은 달 발생한 세월호 참사(4월16일)의 비애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주제기획을 상당부분 바꿨다. 그는 "한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불신, 이런 것들에 대한 참담한 생각과 더불어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했다"면서 "생애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생명들에서 혜린, 태일 등 과거의 인물과 소설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살아남고자 했으나 살아남을 수 없었던 세월호 희생자들은 그에겐 네 인물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박 교수는 "사건 당시 일상을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게 다행스럽기도 했다"면서 "살아남지 못함에 대한 모든 기억과 애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지난 세대의 청년들과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백남기 어르신 등 우리사회 곳곳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을 위해 지난한 시간을 연구 조사와 글쓰기에 바쳤다.

이 과정에서 오발탄(이범선)ㆍ혈서(손창섭)ㆍ아사녀(신동엽)ㆍ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전혜린)ㆍ자유부인(정비석)ㆍ별들의 고향(최인호)ㆍ씌어지지 않는 자서전(이청준)ㆍ겨울여자(조해일)ㆍ투명인간(성석제)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 50여권과 영화 '맨발의 청춘'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중가요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 다양한 텍스트를 사회문화현상과 맞물려 추적했다. 그러면서 살아남지 못한 자들이 이 책을 통해 살아남기를 바랐다.

4년간의 여정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뭘까. 박 교수는 "리더(readerㆍ읽는 사람)가 되라"고 했다. 그는 "준, 정우, 혜린, 태일, 그들은 다른 세계를 엿본 리더(reader)였고,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해 준 리더(leader)였다"면서 "그들이 읽기를 통해 상상한 만큼 현재 우리 삶의 지도가 단단해졌다"고 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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