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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워치]홍콩 행정장관 선거 취재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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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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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선거는 민심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통하지 않는 공식이라는 걸 직접 목격했다. 지난 주말 홍콩 제5대 행정장관 선거 현장에서 민심을 거스른 여성 후보가 당당히 수반에 오르는 걸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홍콩의 최고 통치자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는 2000명의 선거인단 간접 투표로 이뤄지는 탓이 큰데, 사실 진짜 이유는 '중국'이라는 거대 벽이 버티고 있어서다.

홍콩 시민은 우리나라의 대통령 격인 행정장관을 제 손으로 뽑을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산다. 155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홍콩이 중국 영토로 반환된 지 꼬박 20년이 된 올해 선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간선제라고 해서 결과가 민심과 늘 다를 이유는 없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간택한 인물이 홍콩 민심과 역주행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을 뿐이다.
'체육관 선거'라는 안팎의 조롱 속에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강경 친중파 캐리 람의 압승이었다. 홍콩 시민에게 '우산혁명' 트라우마를 강하게 안긴 캐리 람은 생각보다도 더 인기가 없었지만 보란 듯 777표를 얻어 승리했다. 정확히는 중국 정부가 홍콩 민심을 이긴 셈이다.

홍콩 시민단체가 6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가상 투표에서 캐리 람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무려 96.1%에 달했다. '지지한다'는 1.5%에 불과했다. 반면 온건 친중파로 분류된 경쟁 후보 존 창은 지지 응답률이 91.9%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민심은 확실히 존 창으로 향했지만 그는 캐리 람의 절반에 못 미치는 득표로 낙선했다. 선거를 앞두고 범민주 세력의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져 존 창의 대역전극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중국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홍콩 시민 대다수는 캐리 람을 '렁춘잉 2호'라고 부른다. 전임 행정수반인 렁춘잉의 정무적 무능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비아냥이다. 홍콩에서 만난 홍콩대 남학생은 "캐리 람은 홍콩 행정수반에 적합하지 않다"면서 "자신감이 과도해 절차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고 홍콩과 중국의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 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투표권이 없다지만 국민의 절대 다수가 꺼리는 대통령은 상상하기 어렵다. 탄핵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콘크리트 지지 세력을 오래 안고 갔다. 이를 두고 홍콩에서 만난 한 시민은 "오랜 기간 식민 지배 후유증으로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배인 탓이 크다"고 토로했다.

홍콩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들끓는 열망은 2014년 우산혁명을 통해 전 세계에 각인됐다. 79일짜리 반쪽 혁명으로 그쳤지만 중국이 포장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나라 두 개의 제도)' 허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향하는 들불이 확산 가능한가는 홍콩 시민조차 의구심을 품고 있다. 당장의 생계 걱정, 특히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정치 참여는 무의미한 현실이었다. 그나마 희망은 젊은 세대의 사고가 진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캐리 람이 향후 5년 간 홍콩의 내부 분열을 어떻게 봉합해나갈지 개인적 관심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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