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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소리나무/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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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깊어 새를 들인 나무는 새소리에 젖는다. 숲의 배꼽마당에 새벽마다 빗물처럼 고이는 새소리, 푸른 물이 든 새소리는 나이테 파문 사이로 스며들어 켜켜한 목질 속에 자신의 무덤을 만든다. 굳어야 울림이 되는 소리, 하늘 아래 숨을 쉬며 하늘빛이 된 소리는 죽고 깎여서 마침내 악기가 된다. 떨림이 길고 맑은 소리나무의 품에 깃들어 나무가 된 새들이 후대에 자신을 남기는 방법, 편년체의 악보는 가장 푸른 나뭇잎으로 그린다. 통 통 통, 장구통이 되는 오동나무에 아침마다 새들이 모여든다. 안개를 헤치고 나무 베개를 든 무령왕비가 긴 잠에서 깨어나 왕릉 밖으로 걸어 나온다.

[오후 한詩] 소리나무/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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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중 하나다. 그런데 가사를 찬찬히 들어 보면 "오동나무 소녀" 즉 기타에 빠져 있는 동안 정작 자신이 사랑하던 소녀는 "늘 푸른 그 동산을 떠나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 버렸"다는 내용이다. 노래 가사 그대로 "아름답고 철모르던 지난날의 슬픈 이야기"다. 이 시도 오동나무에 대해 쓰고 있는데, 그것은 "장구통이 되"어 "아침마다 새들"을 불러 모으고 또한 "나무 베개"가 되어 무령왕비의 기나긴 잠을 이어 주기도 한다. 무척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난 참 궁금하다. 어떻게 오동나무 하나를 두고 이처럼 오래고 웅숭깊은 사연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그게 말이다. 저 삼국시대보다 더 오래전 그늘 깊은 어느 숲 속에서 새소리에 젖고 있던 오동나무를 시인은 도대체 어떻게 떠올린 걸까. 그리고 "하늘 아래 숨을 쉬며 하늘빛이 된 소리"는 또 어떻게 들어 적은 것일까. 물론 '시적 상상력'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아쉬울 뿐더러 이 시의 넓고 깊은 품에 비해 너무 비좁은 언사다. 오늘은 어느 나무라도 좋으니 그 곁에 한참 앉아 있다 올 생각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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