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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클라리넷 여왕' 마이어가 빚어낸 모차르트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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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네 마이어·서울시향 협연, 텅취 촹 지휘

한정호 객원기자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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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연자가 자비네 마이어였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2월 쾰른 필하모닉 내한을 앞두고 공연 주최사는 2014년 같은 악단의 서울 공연에 자비네 마이어(58)가 협연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티켓 판매 추이를 보고는, 역설적으로 마이어를 성원하는 국내팬의 두께를 가늠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클라리넷 솔리스트'하면 단연 마이어다. 과거 세 차례의 내한(2008년 서울시향, 2014년 쾰른 필, 2015년 마이어 트리오)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향 공연이 열린 예술의전당 객석도 스타를 기다리는 관객들로 빼곡했다.
마이어의 유명세는 1982년, 베를린 필하모닉 감독 카라얀이 단원들과 스물 세 살의 연수 단원을 정단원으로 올리느냐를 두고 벌인 갈등에서 시작됐다. 단원들은 "마이어의 소리가 악단 전통과 맞지 않는다"고 투표로 승급을 부결시켰지만, 남성 우월주의적 결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카라얀은 단원들의 집단적 비토를 리더십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했다.

분쟁이 심화되자 현명하게도 마이어는 악단에서 자진 하차하면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만큼 무한한 국제적 인지도를 안고 솔리스트로 출발한 관악 주자는 역시 카라얀과 베를린 필 사이에서 신음했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 정도다.

연주곡은 2008ㆍ2014년처럼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었고 마이어는 이번에도 현대 악기 대신, 저음역이 보강된 바셋 클라리넷 방식의 카피를 골랐다. 1980년대부터 마이어는 데이비스 시프린, 에릭 호프리치와 더불어 작곡 당대 악기를 통한 모차르트 연주에 앞장섰다.
자비네 마이어와 텅취 창

자비네 마이어와 텅취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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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부터 '클라리넷의 여왕'다운 품위가 묻어났다. 저-중-고 음역에 따라 음색과 표현이 바뀌면서 모차르트 목관 음악이 어떻게 폭과 깊이를 갖는지 관객도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연주 상으로는 주법과 운지에서 현대 악기와 현저히 다른 방식의 기술과 시간이 축적된 작업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삽입곡으로 유명한 2악장 역시 바셋 클라리넷이 최저음의 음역대를 충분히 울리고, 공명을 위력적으로 퍼지게 하면서 시공간 모두 포근해졌다. 악보 구석구석 풍부한 뉘앙스로 다채로운 표정을 만들었고, 상체에 반동을 주면서 선율을 여러 방식으로 노래했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이 쉬워 보이지만, 예순이 목전인 나이에도 마이어처럼 여러 클라리넷족(族) 악기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주자는 드물다. 모차르트에서 여유롭게 미소 짓기까지, 치열한 연습이 매번 신선한 결과물의 바탕이다. 장식음 처리에서 음반과 이전 연주와 다른 접근 역시 그녀의 정진을 헤아리게 한다.

이날 공연의 기대 밖 소득은 지휘자 텅취 촹(35ㆍ莊東杰)의 발견이었다. 1982년 대만 태생의 촹은 국제적 권위의 주요 지휘 경연을 우승(2015 말코 콩쿠르)하거나 준우승(2013 말러 콩쿠르, 2015 솔티 콩쿠르)하면서 이제 프로 세계에 들어온 새내기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부터 메시앙 '미소', 스트라빈스키 '불새'의 1919년 버전을 지휘했다.

곡목이 전임 감독 정명훈(64)이 장기로 하는 영역과 여러 부분 겹쳤는데 촹은 서울시향에 여전히 숨 쉬는 정명훈의 자취를 서서히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악단과 조응하고 작품을 마주했다.

'불새'에서 오른팔에 지휘봉을 쥐고 왼팔을 벌려 마음껏 울어달라고 기능의 분발을 촉구하는 촹의 모션은 정명훈의 전형적인 폼 그대로였다. 시종일관 정확한 비트에 집중하기 보다, 중요 부분에 맥을 짚고 개별 악기의 개성을 급진적으로 웅변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신인으로선 과감한 접근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서울시향의 성숙함이 빛났다.

현재, 서울시향은 악장과 핵심 악기의 수석 주자가 부재한 상황이다. 새 음악감독을 찾는 작업과 별도로 명예지휘자-계관지휘자 제도의 도입이나, 과거의 유산을 이어갈 의욕적인 신인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 역시 조직의 지속가능을 위해 검토해볼 사안이다.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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