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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은 '자비네 마이어' 때문에 '베를린 필'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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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은 '자비네 마이어' 때문에 '베를린 필'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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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1882년에 창립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는 100년이 넘도록 '금녀(禁女)의 벽'이 존재했다. 특별히 '여자 단원은 안 된다'는 규정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성 평등에 있어 꽤나 보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꾸준히 이어진 관행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유리천장'을 거뜬히 뚫을 만큼 실력있는 여성 연주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의 클라리넷 연주자 자비네 마이어(56)는 그 벽을 허물기 시작한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세기 음악의 제왕'이자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군림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작고)은 1982년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한 그를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로 임명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몇 달 전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이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연주자로 입단했지만, 힘이 필요한 목관악기 파트에 사회 초년생인 스물세 살 여성 연주자를 그것도 '수석' 자리에 앉히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베를린 필의 단원들은 오보에 수석이던 셸렌 베르거 등을 중심으로 카라얀의 결정이 독단적이라며 비난했다. 리허설 무대에서 마이어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물론 반대하는 이유가 '성'(性)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이어가 연주하는 밝은 음색이 베를린 필 단원들의 소리와 어우러지지 않고 너무 튄다고 주장했다.

마이어의 수습 기간이 끝날 무렵 단원들은 그를 정식 동료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투표했다. 결과는 반대73, 찬성4. 카라얀은 이러한 결정을 '성차별'이라고 여겼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갈등이 격화되자 마이어는 스스로 베를린 필을 떠났다.

이때부터 카라얀과 그의 강압적 리더십에 불만을 품은 단원들의 별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카라얀은 최소한의 정기 연주만 할 뿐 단원들의 수익을 위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카라얀은 1989년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도 단원들과 화해하지 않았다.
마이어가 퇴단한 배경을 두고 여태까지도 '성차별의 결과', '카라얀과 단원 간 알력 다툼의 희생양'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점은 마이어가 20세기 최고를 다툰 지휘자가 그토록 함께 연주하고 싶어한 클라리넷 연주자라는 사실이다. 마이어는 아시아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분명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필과의 연주는 잊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콘서트에서 우리는 그저 완벽한 음악을 연주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고 회상했다.

입단 9개월 만에 베를린 필에서 뛰쳐나온 마이어는 지금 '클라리넷의 여제'로 불린다. 솔로, 트리오, 실내악 활동을 통해 클라리넷의 위상을 독주와 앙상블이 모두 가능한 악기로 올려놓았다. 최고의 목관 연주자로서 스무 장 넘는 음반을 냈다. 그를 밀쳐낸 베를린 필의 초청을 받아 협연할 정도로 보란 듯이 성공했다.

마이어가 오는 2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세 번째 내한이다. 그는 국내에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 2014년 귀르체니히 쾰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남편 네스트 라이너 벨러(61)와 피아노 연주자 칼레 란달루(59)와 함께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로 무대에 오른다.

원래 이번 공연은 마이어가 그의 오빠이자 클라리넷 연주자 볼프강 마이어(61), 벨러와 함께하는 '트리오 디 클라로네'로 꾸밀 계획이었다. 그러다 볼프강 마이어의 급작스런 병환으로 구성을 바꿨는데 다행히 병세가 호전됐다. 그가 게스트로나마 참여하기로 했다.

'트리오 디 클라로네'의 시작은 1983년이었다. 마이어는 "엄마의 생일에 우리 셋은 내가 태어난 크라일스하임의 작은 교회에서 연주했다. 프로그램은 매우 특별했다. 모차르트의 바셋 호른을 위한 곡이었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길게 더 많은 연주를 같이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앙상블은 세 사람의 바셋 호른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이제까지도 활발하게 무대에 오른다. 마이어는 "우리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왔다. 특히 나와 볼프강 사이에는 남매만이 가질 수 있는 강한 유대가 있다. 말없이도 소통할 수 있어 음악을 하는 데 긴 토론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바셋 호른은 클라리넷의 일종으로, 입을 대고 부는 부분이 보통 클라리넷과 달리 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 발명되어 주로 고전파 작곡가들의 작품에 사용되었는데, 흔히 연주되는 비플랫(B♭) 클라리넷과 에이(A) 클라리넷에 비해 음역이 낮고 음색이 어둡다. 다루기도 불편하다. 그렇지만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면 매력적인 소리가 난다. 마이어는 "바셋 호른 연주는 기쁜 일이다. 부드럽고 멜랑콜리하고 애정 어린 소리를 낸다. 모차르트가 가장 좋아한 악기인데 나도 그처럼 이 악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로 구성이 바뀌었지만 마이어는 이 무대에서도 바셋 호른을 연주할 계획이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클라리넷, 바셋 호른, 피아노를 위한 작은 협주곡 2번', 막스 브루흐의 '클라리넷, 바셋호른, 피아노를 위한 8개의 소품 중 2, 6, 7번', 로베르트 슈만의 '카논 형식의 연습곡' 등을 연주한다. 마이어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수년간 보지 못한 친구에게도 감정을 전할 수 있다. 나는 한국 관객도 콘서트에서 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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