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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옥탑방 빨랫줄/서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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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려진 새가
 비산 먼지 덮인 재개발 지구 하늘을 날고 있다
 누군가 공사 가림막에 둥지를 틀어 놨다
 이역만리 먼 곳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외침을
 다 가지고 오지는 못했을 거다
 탕―탕―탕―, 항타기의 굉음이
 노랗게 버석이는 연탄재를 갖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딛고 사라진다
 새총으로 저항하던 그들의 깃발은
 마당귀에서 삐꺽삐꺽 헛물만 켜는 녹슨 펌프
 나카브 사막의 끝을 바라보던 새가
 관절을 비틀듯 떨치고 일어나
 철거를 거부하는 늙은 용접공의
 옥탑방 빨랫줄에 앉아 하늘을 본다
 부러진 철근을 용접하던
 토치 불꽃 같은 초록빛 태양이
 들국화가 뿌리 내린 골목을 비추고
 용접공의 힘줄 같은 빨랫줄이
 맑은 하늘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오후 한詩]옥탑방 빨랫줄/서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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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은 문학예술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금껏 창안해 온 모든 문화의 장구하고 위대한 핵심 동력이다. 그것은 우리를 저 아득한 하늘의 어느 구름밭으로 훌쩍 인도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지나온 어린 시절의 한순간을 인류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지평으로 전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상상력은 우리의 현실 깊숙한 곳에 내재한 고통의 심부를 느닷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이 시가 그렇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려진 새가/비산 먼지 덮인 재개발 지구 하늘을 날고 있다/누군가 공사 가림막에 둥지를 틀어 놨다"라는 첫 세 행을 보자. 실재했을 사실을 염두에 두고 따져 보자면 시인은 "재개발 지구"의 "공사 가림막"에 그려진 새 둥지 문양을 먼저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려진 새"를 떠올렸을 것이고, 이 두 곳을 이어 "날고 있"는 새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물론 정치적이다. 이 시는 그러니까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통과 슬픔의 연대를 단숨에 묘파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시에서 드물어진 귀한 상상력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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