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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추억으로 만드는 독일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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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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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송편을 깨어 물고 인상을 쓰면 콩이요, 고소한 맛이 입속에 감돌면 그건 깨를 볶아 넣은 송편이었다. 형제들과 깔깔 거리며 웃고 지냈던 그 시절의 장면이 새삼스러운데 송편은 추석에만 먹던 음식이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됐다. 동국세시기에는 겨울 한복판을 지나 2월에도 송편을 수시로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추석에 먹었던 송편은 '오려 송편'이다. '오려'는 올해 수확한 햅쌀로 빚은 송편이라는 말이다. 송편은 또 크기와 모양이 도시마다 다르다.

 서울 송편은 작고 한입에 들어갈 정도이며, 강원도는 감자송편과 도토리송편, 전라도는 '매화송편'이 대표적이다. 충청도 호박송편, 평안도 조개송편, 그리고 제주도 송편은 넓적한 모양이라고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입맛 탓에 송편을 만드는 엄마들의 수고만 있을 뿐 옛날처럼 인기가 없다.
 2004년 10월 초, 독일에서 송편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당시 우리 부부는 경영연수 기회를 틈타 아내와 한 달간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백조의 성을 찾았었다. 그곳 가을 날씨는 스산해서 저녁이 되면 은근히 추웠다. 사실 별로 찬 공기도 아니어서 옷차림을 소홀히했더니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아내와 나는 백조의 성(노이슈반슈타인 성) 관광에 나서면서 비상식량으로 소시지 몇 개만 챙겨왔었다. 이곳 뉘른베르크의 소시지는 유명세를 탈 만큼 맛이 좋아 그닥 휴대를 반대할 이유도 없었고 마땅한 먹거리를 챙겨갈 만큼 유유자적한 여행도 아니었다.

 뉘른베르크의 한인 교포 세 명과 동행한 우리 일행은 성을 만나자 감탄사를 절로 자아냈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1869년 9월 건립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은 견고했다. 이 성을 짓느라 정신병자 소리를 들으면서 왕위에서 퇴위를 당할 정도로 몰입한 루트비히 2세의 처지가 떠올랐다. 결국 완공도 못 보고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욕망의 결과는 하얀색이다.
 암튼 성에서 내려다본 뉘른베르크 도시의 풍경은 정갈했다. 잘 차려입은 성숙한 여인의 고상한 품위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주홍색 지붕이 뽀족하게 올라선 집들과 짙푸른 색깔로 초원으로 뒤덮은 구릉지를 마음 내키는 대로 몰려다니는 양떼들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그 양떼들이 말썽이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우리 일행은 귀가를 서둘렀으나 양떼들이 농촌 길을 가로 막아 자동차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상향등으로 해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승용차를 에워싼 양떼들은 차창으로 머리를 마구 들이밀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뉘른베르크 소시지였다. 비상식량을 양떼들에게 털리고 배를 쫄쫄 굶으면서 2시간여나 지나서야 목동인지 청년인지 겨우 나타나서 하얀 이를 드러내 내 보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우리 일행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이에른 지역에서 약 200여Km를 달려가는 동안 주책없이 배꼽시계는 연실 울려대고 있었다. "이것 좀 드시지요." 독일 거주 교포가 건네준 음식은 송편이었다. 고향 생각도 나고 추석도 지낼 겸 독일 솔잎을 깔고 쪄낸 송편이라는 것이다. 송편 속에는 갖가지 재료가 들어 있었다. 콩, 깨, 소고기, 그리고 독특하게 뉘른베르크의 소시지도 들어 있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주변을 붉게 물들였던 거목들과 단풍, 그리고 양떼들의 지독한 스킨십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이다. 이번 추석에는 아내와 함께 추억의 송편을 빚어 봐야겠다.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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